소설은 그렇다쳐도 비평은 기술적인(descriptive)한 언어로 쓰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기술적인 언어가 아닌 비유적 언어(figurative language)를 쓰는 평론가들이 많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도 기술적인 언어를 통해 소설에 대한 평을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본 것 같다. 비유적 언어의 연쇄를 남발하는 것은 본인들이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의심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학술적 에세이를 쓸 때 문장력이 후달리면 늘 '어디서 들어본 비유적 표현'을 써서 후려치고 넘어가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껴봤기 때문에. 아무튼 이 문제는 계속 생각해보기로. 

한국소설은 식민지 시기가 끝나고 어느 시점부터 평론가와 작가들이 더이상 바이링구얼이 아니게 된 후로부터 급격하게 쇠락한 게 아닐까, 적어도 언어능력의 구사라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작품과 좋은 비평을 대규모로 축적해 본 경험이 없는 언어 전통에서 뭘 기대할 수 있으랴, 이게 솔직한 심정. 

2019.1.18. 10:05-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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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망이 있다면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는 것이다. 작년 6월 말에 사 놓고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이 비슷한 현상을 부르는 말로 'tsundoku'라는 게 있다고 한다) 지난번에 박상영 글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tantrum'이라고 분풀이(?)를 하다가 그렇다면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어른을 위한 몇 안 되는 영국 소설'(one of the few English novels written for grown-up people)이라고 불렀다는 바로 그 소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가 내 일상에 자꾸만 읽어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탁을 받았던 소설이라 올해는 한 번 일독을 해보고 싶다. 

뉴요커에 실린 어떤 기사의 저자는 어른의 일을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풀어서 얘기하고 있더라. '어떻게 깊이 사랑하는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결혼할 것인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것인지, 어떻게 만족하면서 일할 것인지, 어떻게 야심을 관리할 것인지, 어떻게 실망과 더불어 살 것인지' 하는 질문들에 대해서 이 책이 다룬다고 한다. 내가 답을 갖고 있지 않은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좋은 글은 질문이 좋아야 좋은 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미들마치를 구글에 넣어보면 내가 개인적으로도 안면이 있는 어떤 분의 글이 뜨는데, 사실 그 분 생각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 나는 그와 관점이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도 있고, 이래저래 유럽의 계몽주의 시절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근자의 사정도 있고, 또 내 친구 중의 하나가 경애하는 스피노자와 관련하여 조지 엘리엇이 바로 <에티카>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라고 하는 점에도 끌리고,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이 책을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솔직히 들어가본다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신적인 믿음, 유아적인 tantrum, 유아들의 독재(paedocracy) 등에 질린 나머지, 책 속에서라도 어른의 세계, 이성과 계몽의 세계를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이 책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지. 


#미신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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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같은 것을 적어볼까 한다. 읽은 차례 역순.

<한국어> 

버락 오바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미셸 오바마, 비커밍

나쓰메 소세키, 행인

나쓰메 소세키, 춘분 지나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피터 버거,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피터 버거, 의심에 대한 옹호

크리스 베일리,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안다

고어 비달, 크리에이션

토니 로빈스, 머니

다윈, 찰스 다윈 서간집 진화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로버트 해리스,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유령작가

라이너 모리츠, 유럽의 명문서점


<영어>

William Allan, A very short introduction: Classical Literature

 →전문가와 초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개론서, 혹은 개론 수업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 insight를 준 책.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 작가들 얘기 하는 대목은 잊기 어렵..

Stanley Wells, A very short introduction: Shakespeare's Tragedy

 →인상적인 첫문장을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3페이지 안에서 승부를 본다.

Bart van Es, A very short introduction: Shakespeare's Comedy

 →솔직히 마지막 책장 덮기까지 별로였지만 엔딩은 잊을 수 없었다. 그 엔딩을 읽기 위해서 지루한 나머지 장들을 넘길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Anthony Grafton, For the Sake of Learning: Essays in Honor of Anthony Grafton

→올해 본 책 중에 단연 가장 고귀한 책이었음. 나는 맨 마지막 챕터 하나밖에 못 봤지만, 일단은 그걸로도 충분했음. 

Stephen Greenblatt, Tyrant

 →말이 필요없.. 머리 속에 화수분이 있나. 

Lionel Jensen, Manufacturing Confucianism

 →유교에 대한 나의 순진한 개념을 뒤흔든 책. 

Michael Szonyi, Practicing Kinship (이 책은 2010년에 읽었지만 그 때는 읽은 게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음)

 →한국학 연구의 미래를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음. 

Michael Loewe, Dong Zhongshu, a "Confucian" Heritage and the Chunqui Fanlu

 →retrospective한 접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내파할 것인가 하는 것에 있어서 거의 정석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음. 유일한 정석은 아니라도 기억할 만한 책. 


그밖에 Bernard Knox가 펭귄클래식의 Robert Fagles 번역의 Sophocles, Antigone에 쓴 introduction을 인상깊게 읽었다. 인트로덕션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은 아니지만 닥터 Elena Carrera의 호지킨 책 서평도 감탄하며 여러번 읽었음. 그런 서평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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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王曰 嗚呼라 封아 汝念哉어다 

今民은 將在祗遹乃文考 紹聞하 衣德言하 

往敷求于殷先哲王하야 用保乂民하 

汝丕遠惟商耈成人하 宅心知訓하 

別求聞由古先哲王하 用康保民하 

弘于天하 若德이 裕乃身이라야 不廢在王命하리라

왕이 말씀하였다. 

"아 봉아, 너는 생각할지어다. 지금 백성들을 다스림은 장차 네가 문고를 공경히 따름에 있으니, 너는 옛날에 들은 것을 이으며 덕언을 행하도록 하라. 

가서 은나라의 선철왕을 널리 구하여 백성들을 보호하여 다스리며, 

너는 크게 은나라의 노성한 사람들을 멀리 생각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가르침을 알며

별도로 구하여 옛 선철왕의 일을 듣고서 행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보호하라. 

천리를 넓혀 네 덕이 너의 몸에 넉넉하여야 왕에게 있는 명을 폐하지 않을 것이다. 

(무왕이 동생 강숙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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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惟乃丕顯考文王이 克明德愼罰하시니라.

너의 크게 드러나신 아버지 문왕께서 능히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가셨다. 

*좌씨가 말하기를,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감은 문왕이 주나라를 창조(造周)한 방법(所以)이다. '명덕'(덕을 밝힘)은 덕을 높임에 힘씀을 이르고, '신벌'(형벌을 삼감)은 형벌을 제거함에 힘씀을 이른다. '명덕근벌'은 한 편의 강령이니 '불감모환과' 이하는 문왕의 명덕 근벌이다. '여념재' 이하는 강숙이 명덕하고자 한 것이고, '경명내벌' 이하는 강숙이 근벌하고자 한 것이며, '상유민' 이하는 덕으로 형벌을 행하고자 한 것이고, '봉경재' 이하는 형벌을 쓰지 않고 덕을 쓰고자 한 것이다. 맨 끝에는 하늘의 명과 은나라의 백성으로 끝맺었다. (강고 편 전체에 대한 코멘트)

*voca

丕顯: 1.猶英明。《書‧康誥》:“惟乃丕顯考文王,克明德慎罰。”

慎罰: 謹慎處理刑罰之事。《書‧康誥》:“惟乃丕顯考文王,克明德慎罰。”


4장

不敢侮鰥寡하시며 庸庸하시며 祗祗하시며 威威하사 顯民하사 用肇造我區夏어시늘 

越我一二邦이 以修하며 我西土惟時怙冒하여 聞于上帝하신대 

帝休하사 天乃大命文王하사 殪戎殷이어시늘 

誕受厥命하시니 越厥邦厥民이 惟時敍어늘 

乃寡兄이 勖하니 

肆汝小子封이 在玆東土하니라

감히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으시며, 등용해야 할 사람을 등용하고 공경하여야 할 사람을 공경하고 위엄을 보여야 할 사람에게 위엄을 보이시어, 덕이 백성에게 드러나시어 우리 구하(중국)를 창조하시자, 

우리 한두 나라가 닦여지며 우리 서토(西土)가 이에 믿고 무릅써서 상제에게 알려지시니, 상제가 아름답게 여기셨다. 

하늘이 마침내 문왕을 크게 명하여 은나라를 쳐서 멸하게 하시므로 그 명을 크게 받으시니 그 나라와 백성들이 이에 펴지므로 네 과형(寡兄)이 크게 힘썼다. 

그러므로 너 소자 봉이 이 동토(東土)에 있게 되었다.


*무왕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집전: 오씨가 말했다. "은나라를 쳐서 멸한 것은 무왕의 일인데 여기서 문왕이라 칭한 것은 무왕이 감히 자신의 공으로 삼을 수 없어서이다."

*voca

肇造: 謂始建。

區夏1.諸夏之地,指華夏、中國。

西土: 1.指周部族所居的故地。大致在今陝西省。

怙冒: 1.謂勤勉治國之大功。《書‧康誥》:“越我一二邦,以修我西土,惟時怙冒,聞于上帝。”王引之曰:“怙,大也……冒,懋也。‘惟時怙冒’,言其功大懋勉也。”

誕受: 接受。誕,語助詞。《書‧微子之命》:“皇天眷佑,誕受厥命。”

勖: 힘쓸 욱 []

東土: 1.古代指陝以東某一地區或封國。《書‧康誥》:“乃寡兄勗,肆汝小子封,在茲東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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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원 다닐 때, (내가 다닐때는 민추였다.) 서경이 정말로 재미없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을 가장 확실하게 예증해 주는 텍스트란 생각을 했다. 게다가 문장이 아니라 무슨 메모 같은 글자들의 나열을 보면서 이걸 sentence라고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긴 한데, 오늘 아침에 VSI의 classical literature를 보면서 무릇 글이란 시에서 역사로 진화했다, 는 얘기를 보면서, 그래 이렇게 삽삽()하게 쓸 수도 있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헤로도투스 왈 모든 부족들은 자기 문화를 최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나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경 식의 문투에 대해서 고약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고, 그랬음. 


아무튼 오늘 것은 

2장

王若曰 孟侯朕其弟小子封

왕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맹후인 짐의 아우 소자 봉아."

집전] 왕은 무왕이다. 맹은 으뜸이니 제후의 으뜸이 됨을 말한 것이다. 봉은 강숙의 이름이다. 구설에 주공이 성왕의 명으로 강숙에게 고했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 (성백효 역)

-무왕은 강숙의 형이다. 

-주공은 문왕의 아들. 

-1장에서는 주공이 동국 낙에 대읍을 만들고 나서 잘 다스려지자 여러 고위층들이 와서 조회했다, 대략 이런 얘기가 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무왕이 아우 강숙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주공은 어디로 갔나? 

-상나라를 이기고 주나라 만든 지 몇 년 안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예전에 팔켄하우젠 책 읽었을 때나 작년 누구 책을 보면 상나라 망하고 주나라 들어선 이후에 '천명'이란 아이디어가 들어오면서 비로 정치적 지배의 정당화라는 것이 시작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강고 끄트머리에 천명은 일정하지 않다고 하는, <대학>에 언급되면서 유명해진 바로 그 말이 있다. 

-현대 한국어를 주고 한문으로 작문해 보라고 하면 저 문장 순서가 나오겠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 어순은 정말 기괴해. 풀리블랭크 다시 찾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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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전한 자기애

영어 논문이 어제부터 시동이 걸린 느낌이다. 아무리 못났어도 내가 쓴 영어 문장을 계속 보고 고치지 않으면 절대 나아지지 않겠지. 글을 쓴다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쉽게 잘 안 되는 어려운 장르의 글을 써보려고 생각한다면 역시 일정 정도의 건전한 자기애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오늘의 영어 한 마디

"They were intellectuals, men in conscious tension with society and the state, for whom the idea of the tao was a means of challenging the status quo."  Bol (1992, 22-23)

 2.1. society에는 관사를 안 붙이고 state에만 the 가 붙네.

 2.2. 베버적인 관점에서 인텔렉추얼을 본다. 


3. 오늘의 한문 한 문장

 어제에 이어 주서 강고의 첫 문장을 복기해 볼까 한다. 강고는 총 24장이라, 매일 보면 다음달 초까지 해서 끝날 듯? 형벌에 대한 얘기여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惟三月哉生魄 周公이 初基하사 作新大邑于東國洛하시니 四方民이 大和會어늘 

 侯甸男邦采衛百工이 播民和하야 見士()于周하더니 

 周公이 咸勤하사 乃洪大誥治하시다. 


 3월 재생백(16일)에 주공이 처음 터전을 잡아 새로운 대음을 동국인 낙에 만드시니 사방의 백성들이 크게 화합하여 모이자,

 후, 전, 남, 방, 채, 위, 백공들이 인화를 전파하여 주나라에 와서 뵙고 일하더니 

 주공이 모두 수고한다하여 크게 다스림을 고하셨다.  (성백효역 서경집전)


  →주공(문왕의 아들)이 강숙(무왕의 아들, 자신의 조카)에게 무왕을 가탁해서 가르치는 얘기. 



4. 아침에 이코노미스트를 보니까 메르켈의 후계자로 Annergret Kramp-Karrenbauer라는 인물이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그 사람이 " Ich glaube " 운운 하는걸 보니까,  옛날에 했던 독일어가 몸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내가 베네룩스 국가에 살았다면 4개 국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영어 일본어 독일어, 그리고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와 더불어 정치가들은 참 rosy한 얘기를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Ich kann, ich will, und ich werde.." 그래도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있겠지. 


*오늘의 팁

 당연한 거지만, 점심을 적게 먹고 오후에 녹차 한 잔을 마시면 그나마 오후 시간을 괜찮은 컨디션으로 보낼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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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기 모드

읽을 때나 쓸 때 비행기 모드를 해 두고 작업을 하면 훨씬 더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다. 


2. asmr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해리포터 대도서관 소리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사흘째 사용중이다. 

 단순 작업을 할 때에는 무반주 현악도 괜찮은 것 같은데, 쓰기 처럼 극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에서는 역시 곡조가 있으면 안 좋은 듯. 


3. 어제 배운 한 마디. 

"要囚, 服念五六日, 至于旬時, 丕蔽要囚." (서경 주서 강고)

요수(죄를 판결함)를 할 때는 5-6일간 가슴 속에 두고 생각하며, 열흘이나 한 철(3개월)에 이르러서 요수를 크게 결단하라. 

'복념순일'이라고만 써 있어도 위 문장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 

蔽는 판결하다, 라는 뜻이라는데, 그러면 요수도 동사여서 중복이지 않나? 현대 중국어의 연동문 같은 것인가? 


1. 생각보다 저자명과 제목을 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명과 제목이 국문 논문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쓱 흡수되는 것이 아니니까 몇 번이고 더 반복해서 보고 기억을 해야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앎과 연결이 됨.

 내가 내 영어 논문에 제목을 붙일 때 기존 논문들의 제목이 머리 속에 죽 있어야 그걸 토대로 적당한 제목을 고안해 낼 수 있음. 

 어쩌면 결국 남는 것은 저자명과 제목 뿐일지도. 초록까지 가지도 못하고. 


2. 초록을 읽을 때, 내 기준에 따라 잘 된 초록들을 선별해서 반복 숙지한다. 

 노트에 손으로도 적어두고 에버노트에도 적고, 핸드폰 메모장에도 적어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밤에 잠자기 전에 계속 반복해서 읽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단순히 그 문장을 외우는 것 뿐 아니라, 그 문장을 가까이 할 때 비로소 그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되는 데 가까워질 수 있는 거겠지. 


3. 동사의 용법을 잘 파악한다. 

 내가 읽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것 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영화 <45 years later>에 나오는 것처럼, 명사는 그럭저럭 쉽게 외워지고 오래 기억에 남지만 정작 입력도 보존도 잘 안 되는 것은 동사다. 동사가 어떤 목적어와 결합하고, 관용적으로 어떤 전치사를 쓰는지, 해당 동사는 어떤 다른 동사와 interchangeable 한지를 잘 봐두는 게 중요. 


*영어 논문을 읽을 때, 언젠가는 영어 논문의 저자가 된다는 태세를 갖고 읽을 때 훨씬 더 흡수가 잘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학습의 기본은 반복. 고어 비달의 <크리에이션>에서 키루스 스피타마가 하는 대사가 있어. "얘야, 학습의 기본은 반복이란다."


일단 오늘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 

영어 논문 읽을 때 몇 가지 지침이랄까 하는 것을 스스로 리마인드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적어보았다. 인문 사회계열(사회계열에서는 역시 질적 방법론을 쓰는 경우)의 논문을 읽을 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박사 통틀어 대학원 생활이 9년차. (그러고보니 정말로 안식년이 길었네.)이고 영어논문의 세계에 engage 한 것은 아마 7년 정도 될 것 같은데, 뭔가 공중에 발길질 하듯이 글을 읽어서야 영영 제자리걸음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아무리 늦어도 내일 모레까지는 초고를 다 써야 항공료 지원을 기대해 볼 수 있을 텐데 진도가 지지부진해서 걱정이 된다. 지난 달에 어찌어찌 죽을 힘을 다해서 목차와 초록, 인트로덕션을 썼었다. 그 후 너무 기진맥진해서 그 파일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방치해 둔 지 한참 되었었다. 아마 열흘이 넘은 것 같다. 남은 스케줄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최소한 그 파일을 열기라도 하자'라는 아주 간단한 다짐조차 지켜지지가 않았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자각이 들어 그랬는지 오늘 또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 먹고 8시 넘은 시간에야 비로소 그 파일을 열었다. 그렇게 여러번 고치고 또 고친 초록과 introduction인데도 다시 보니 미숙한 부분이 보이고, 게다가 영어로 쓴 글이다 보니 내가 썼어도 내가 뭘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읽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겨우겨우 써둔 초록과 도입 부분을 고치고 마지막 한 단락을 추가해서 draft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2시간이 지나갔는데, 이게 writing 2시간은 reading 2시간과 비할 바가 못 되는, 아주 energy-consuming한 시간이었다. 

구글 스칼라와 시소러스, 영어사전 등등을 띄워 놓고 이렇게 저렇게 조물딱거려서 문장을 만드는 데 한 문장 한 문장 만들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 각주를 달아야 할 자리에 간단한 각주 하나 다는 것만도 상당한 품이 든다. 사실 석사논문 한국말로 쓸 때도 문장력이 부족해서 고생했는데, 한국말은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싶으니까 이제 영작이 기다리고 있네. 사실 내가 선택해서 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무슨 배짱으로 나서서 고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영어 논문 이렇게 쓰면 할 만 합니다' 같은 가이드북이라도 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외국어로 논문 쓰자면 일단 외국어 논문을 무수히 많이 읽고 머리 속에 이디어매틱한 표현이 많이 들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걸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모래 주머니를 달고 달리기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엔 영어 논문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는데, 그게 좀 할만 해 지고 났더니 writing의 세계는 또 완전히 새롭더라고. 이걸 말로 발표하는 건 또 다른 세계겠지.. 

하여간, 11월에 고심해서 목차는 만들었으니 그나마 힘든 고비는 하나 넘겼고, 이제 기계적으로 나머지 섹션들을 써 내려가면 된다.. 근데 솔직히 4장 약한데,.. 아냐 그건 4장 쓸 때 고민하기로. 그건 그 때 되면 또 좋은 생각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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