錢塘羅貫中, 本者南宋時人. 編撰小說數十種, 而水滸傳, 敘宋江等事, 姦盜脫騙, 機械甚詳. 然變詐百端, 壞人心術, 其子孫三代皆啞, 天道好還之報如此.

 

전당의 나관중은 본래 남송 때 사람인데, 소설 수십 종을 편찬했다. 거기서 수호전은 송강 등의 일을 서술한 것으로 간악한 도적들이 남의 것을 빼앗고 속이고 간교한 계책을 내는 일 등을 매우 상세하게 써 놓았다. 그러나 요변스럽게 백 가지 단서를 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려, 그 자손 삼대가 다 벙어리가 되었으니 천도가 보응을 잘 되돌려 줌이 이와 같다

 

-허균의 <서유록발>과 관련하여. 

-田汝成(1503-1557): 절강 사람. 자는 숙화(叔禾)다. 가정(嘉靖) 5년(1526) 진사가 되었고, 남경형부주사(南京刑部州事), 귀주첨사(貴州僉事), 광서우참의(廣西右參議) 등을 지냈다. 留靑日札을 쓴 田藝蘅(1524~1591)은 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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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선(吳從先)  (0) 2020.09.01

생몰년 미상. 가정 연간에 태어나 숭정 연간에 졸했다. ()는 영야(寧野)와 호는 소창(號小窗). 진계유와 교유하며 많은 책을 읽고 저술에 몰두했다. 그 친구 오규(吳逵)가 말하길, “영야는 사람됨이 강개하고 책을 즐겨 읽으며 많이 저술하고, 세상에 문으로 이름이 났다. 약속을 중시하고 천금을 가볍게 썼으며 협객으로 이름나 있다. 물품을 생산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며 경쟁하기를 즐기지 않았고 깊은 계교를 꾸미지 않고 어리석다고 했다. (소창청기서문) 그의 의젓하고도 소탈하고 순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평소에는 해학잡설과 시부(诗赋)와 문장(文章)도 즐겨 지었다. 저서로 小窗自纪4, 小窗艶纪14,《小窗清纪5, 小窗别纪4권이 모두 四库总目에 수록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baidu)

 

소창자기와 소창염기는 다음에서 확인 가능

https://ctext.org/searchbooks.pl?if=gb&author=%E5%90%B3%E5%BE%9E%E5%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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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선과 소창청기에 대해서는,

王重民 (1992), 冷廬文藪, 上海古籍出版社, 177~195.

 

오종선은 翕縣 사람으로 남경국자감 주관(做官) 풍몽정(馮夢禎, 1548~1605)을 따르며 배운 것으로 보인다. 오종선이 쓴 請開之馮太史啓에서 태사께서 내 고장을 지나가면서 나를 불러 종유하도록 허락하셨다[太史惠臨我郡, 召余從遊]’라고 하여 자신이 풍몽룡을 종유했음을 밝혔기 때문. 이후 1598년에 풍몽정이 탄핵되었을 때 태학생 장방(張榜)이 유생 천여명을 모아 게소(揭訴)할 때, 18~19세였을 오종선 역시 가담했을 것으로 짐작됨. 그러나 풍몽정은 해직되어 항주에서 죽었고, 오종선은 그의 좌천과 죽음을 애도했다. (소창자기 권4, 過馮開之太師快雪堂, 소창자기 권3 遙祭馮開之老師文) 이후 오종선은 벼슬하지 않고, 장방, 하위연(何偉然), 초횡(焦竑) 등과 교유했다. 특히 이탁오를 존숭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이독옹찬(李禿翁贊)을 짓는 등 양명좌파의 사상적 자장 안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책을 편집 출판하는 일에 종사하여 이탁오의 사강평요(史鋼評要)1613년에 교감 출판했고, 막역한 사이인 하위연과 함께 1626년과 1629년에 총서인 쾌서(快書)광쾌(廣快書)를 편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종선은 당대 청언작가로 이름이 높은 진계유와 왕치등(王穉登)의 영향을 받아, 1614년에 한적, 아취 생활과 관계된 내용을 담은 청언집 소창청기를 간행했다. 이런 청언집은 당시 출판업 발달과 더불어 만명 시기에 집중적으로 출판 유통되었는데 주로 오종선처럼 벼슬하지 않은 산인이나 은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 청언집은 읽을 거리로 흥미가 있고 처세와 수양에 도움 되는 경우가 많아 상품 가치가 있었다.

또 청언은 창작이 아니라 편집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도 자기 안목으로 기존 글을 가려 뽑는다는 점에서 일정한 문학적 성과가 있기도 했다. 소창청기에는 진계유, 이탁오, 원굉도 같은 동시기 문인의 글을 선록하고 있고, 또 오종선 자신의 창작도 포함하고 있다. 고오야마 기와무(合山九)는 이 책이 서정적 성향을 띠어 명말에 널리 유포되었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를 만큼 호응이 있었다고 하였다. (한영규, 한적의 선망과 한정록』」, 문헌과해석19, 2002에서 재인용. (合山九 (1978), 167) 고오야마 기와무의 저작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음.)

 

(김은정, 「『소창청기이본과 17세기 초반 조선에서의 수용 양상, 한국한문학연구47, 한국한문학회, 2011, 49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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