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樂學軌範有感

 

海東文物屬昌辰

廟樂初成考泗濱

雅俗雜陳迷正始

土匏交戛混韶鈞

洼淫縱未班夷沫

要眇安能感鬼神

焉得一夔調黍律

更聆疏越合天人

 

해동의 문물이 성세를 만났으니

사빈(泗濱)을 살펴 종묘악이 막 만들어졌네.

아속이 섞여 있으니 정시 연간의 음악이 아득하고

토음과 포음이 어울리니 소균이 뒤섞였네

몽매함에 이어질 정도로 음란하진 않으나

귀신에게 감응할 만큼 오묘하다 하겠는가

어ᄄᅠᇂ게 하면 기를 만나 선율을 조정하여

천인에 합치되는 소월을 들어볼까.

 

*악학궤범: 1493(성종24) 때 성현과 신말평 등이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악전. 가사가 한글로 실려 있고, 궁중음악은 물론 당악, 향악에 관한 이론 및 제도, 법식 등을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93.

 

*사빈: 서경》 〈우공(禹貢)사수 물가에 떠 있는 경쇠이다.[泗濱浮磬]”라고 하였다. 사빈의 돌로 경쇠를 만든다.

*토음·포음: 각각 팔음(八音)의 하나. 토음에는 훈()과 같은 것이 있고 포음에는 생황(笙篁) 등이 있다.

*소균(韶鈞): 과 균천광악(鈞天廣樂, 궁중음악 혹은 천상의 음악)을 병칭한 것으로, 아름다운 악곡의 범칭.

*(): 순임금 때 음악을 관장하던 신하의 이름.

*소월(疏越): 종묘에 제사할 때 쓰는 아악

 

鸞旗拂曉照蓬萊

戟衛宵嚴左掖開

三省侍臣從法駕

九門寒漏徹銀臺

分甘彭澤投官去

誰引安仁寓直來

終日曲房容坐嘯

皁衣傳語仗初廻

 

새벽녘 난새 깃발은 봉래궁에 비추는데

근위병들 밤 경비 설 때 좌액 문 열렸네.

삼성의 신하들은 법가를 모시고

궁궐의 물시계 소리는 은대에까지 들려오네

팽택령 도연명은 기꺼이 벼슬을 던졌는데

누가 안인(반악)을 데려다가 숙직을 서게 하는 건가.

종일토록 방에 앉아 휘파람 불 만한데

의장((儀仗)이 돌아왔다고 조의가 말 전하네

 

-拂曉: 새벽. 밝아올 즈음.

-戟衛: 창을 들고 순시하는 군사. 시종하는 직무를 가리킨다.

-左掖: 궁성 정문 좌측의 작은 문. 당나라 때에는 문하성을 가리켰다.

-寒漏: 차가운 날씨에 주전자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安仁: () 나라 때 문인으로 황문 시랑(黃門侍郞)을 지낸 반악(潘岳)의 자이다. 여기서는 도연명처럼 벼슬이 뜻에 맞지 않아 그만둔 허균 자신이 다시 승지가 되어 숙직을 하고 있으므로 이에 비유한 것이다.

-曲房: 내실. 밀실.

-坐嘯: 한가로이 앉아서 휘파람 불다. 후한서 당고전 서문에서 유래. 후에 좌소라 하면 관직이 맑고 한가롭거나 정사를 돌보니 않음을 말함.

 

계랑을 애도하다

[계생은 부안 기생인데, 시에 능하고 글도 이해하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그러나 천성이 고고하고 개결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담소하고 가까이 지냈지만 난()의 경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2수를 지어 슬퍼한다.]

 

哀桂娘

[桂生扶安娼也. 工詩解文, 又善謳彈. 性孤介不喜淫, 余愛其才, 交莫逆. 雖淡笑狎處, 不及於亂, 故久而不衰, 今聞其死. 爲之一涕, 作二律哀之]

 

1)

妙句堪摛錦

淸歌駐雲

偸桃來下界

竊藥去人群

신묘한 글귀는 펼쳐놓은 비단같고

청아한 노래는 구름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세계에 귀양 왔고

약을 훔쳐 사람들 사이를 떠났구나.

 

-약을 훔쳐: (羿)가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어다 놓고 미처 먹지 못하고 집에 둔 것을 그의 처 항아가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로 달아나 월정(月精)이 되었다고 한다. 淮南子 覽冥訓

 

燈暗芙蓉帳

香殘翡翠裙

明年小桃發

誰過薛濤墳

부용 장막 너머로 등불은 어두워지고

비취색 치마에 향기만 남았네.

내년에 복사꽃 피어날 때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을까.

 

-설도: 당나라 중기의 名妓. 음률과 시사(詩詞)에 능하여 항상 원진ㆍ백거이ㆍ두목 등과 창화하였다. 여기서는 계생을 이에 비유한 것이다.

 

2)

凄絶班姬扇

悲涼卓女琴

飄花空積恨

蓑蕙只傷心

처절한 반첩여의 부채요

슬픈 탁문군의 거문고로구나.

흩날리는 꽃에 부질없이 한은 쌓이고

시들어버린 난초에 그저 마음 상할 뿐.

 

-반첩여의 부채: 반첩여(班婕妤)는 한 성제(漢成帝) 때의 궁녀. 성제의 사랑을 받았는데 조비연(趙飛燕)에게로 총애가 옮겨가자 참소당하여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를 모시게 되었다. 이때 자신의 신세를 소용 없는 가을 부채에 비겨 읊은 원가행(怨歌行)을 지었다. 漢書 卷97 列女傳

-탁문군의 거문고: 탁문군(卓文君)은 한 나라 촉군 임공(臨邛)의 부자 탁왕손의 딸. 과부로 있을 때 사마상여의 거문고 소리에 반해서 그의 아내가 되었는데 후에 사마상여가 무릉(茂陵)의 여자를 첩으로 삼자 백두음(白頭吟)을 지어 자기의 신세를 슬퍼한 것을 말한다.

 

蓬島雲無迹

滄溟月已沈

他年蘇小宅

殘柳不成陰

봉래섬 구름에는 자취가 없고

창명의 바다에 달은 이미 잠겼구나

다른 해 봄이 와도 소소의 집에는

남은 버들이 그늘 이루지 못하겠네.

 

-소소(蘇小): 남제(南齊) 때 전당(錢塘)의 명기(名妓)의 이름. 소소소(蘇小小)의 준말. 전하여 기생의 범칭으로 쓰인다. 백거이(白居易)의 항주춘망(杭州春望) 시에 밤중의 파도 소리는 오원의 사당으로 들고, 봄날의 버들 빛은 소소의 집에 갈무리했네.濤聲夜入伍員廟 柳色春藏蘇小家라고 하였다.

참고, 오산집 권2, 칠언율시 중 지봉에게 바치다(奉呈芝峯)소소의 문전에는 버들이 늘어졌지(楊柳依微蘇小門)”라는 구절이 있다.

 

9. 안무 차 함경도로 나가는 유천 한상국에게 봉송하다. (16109)

(奉送柳川韓相國出按咸鏡道)

 

尙書初辭大執法,

旋着武侯單白袷.

盡付關北二十州,

要試胸中十萬甲.

상서는 막 대사헌직을 사임하고

돌아서서 제갈무후의 단백겹을 입었구나.

관북 20주를 남김없이 부탁받았으니

흉중의 십만 갑병을 시험해 보겠네.

 

-문두의 는 어떻게 새겨야 하나?

-武侯單白袷: 제갈량이 군대를 지휘할 때 늘 단백겹을 입었다는 고사를 본 것 같은데 전거가 기억이 안 남. 

-이 시기에 관북이 실제로 20주였나? 

 

 

王念北方豐沛鄕,

比年孼虜恣蹈梁,

千人百人纔擊刺,

十城九城俱逋亡.

임금께서 북방의 풍패향(제왕의 고향)을 생각하시니

최근 되놈들이 함부로 날뛰고 노략질해서이지.

천명 백명이 겨우 공격해 놓으면

열 개 성, 아홉 개 성은 모두 도망쳐 버리네 (주체는 누구?) 

 

--豐沛: 함흥(咸興)이 전란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쟁터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풍패(豐沛)’는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인 패현(沛縣) 풍읍(豐邑)으로, 전하여 제왕(帝王)의 고향을 지칭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본관이 전주이고 그 선조가 함경도 함흥 등지에 살았기 때문에 함흥과 그 일대 및 전주 지방을 풍패지향(豐沛之鄕)이라 일컫는다. 여기서는 함흥을 가리킨다. 신임 감사의 도계를 하례하여 올린 계사新監司到界賀上啓| 지봉집(芝峯集)

 

 

 

以此戰守渠豈敢,

髦倪實恐胡來噉.

王恢縱詘馬邑謀, [暗用安國事]

忠獻可寒西賊膽.

이런 식의 공격과 수비로 제 어찌 감히 나서겠나

노약자들은 실로 오랑캐들 와서 해먹을까 근심하네.

왕희는 비록 마읍의 꾀에 굴했지만 [암암리에 김안국(?)의 사실을 인용한 것]

충헌은 서하 오랑캐의 담을 서늘케 하였네.

 

-왕회: 왕회는 연() 출신으로, 오랑캐의 일에 대해 잘 알았는데, 당시에 흉노의 선우가 한나라를 자주 괴롭히므로 무제가 이에 대한 방책을 묻자, 왕회가 흉노는 맹약해 놓고 몇 해 안 가 곧 다시 배신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쳐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그 계책이 채용되어 30만의 군대를 마읍(馬邑) 골짜기에 정돈하고 선우를 유인하여 습격하려 하였는데, 선우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왕회는 진격하지 않았다는 죄를 받고 하옥되어 죽었다. 漢書 卷6 武帝本紀전억석가 前憶昔歌, 동명집(東溟集) 9 각주.

-충헌: 송나라 명신 한기(韓琦)의 시호. 일찍이 서하(西夏)가 배반하자, 한기가 섬서경략안무초토사(陝西經略按撫招討使)가 되어 평정하였다. 서적(西賊)은 곧 서하를 뜻한다.

 

制下西垣輿誦同,

眼前久已無山戎.

翥鶻團袍疊椹紫,

明虹鏐帶園花紅.

서쪽 변방에 제서(制書) 내리는 데에는 여론이 같았고

안전에는 산융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

자골(翥鶻)의 단포(團袍)에는 자심이 첩을 짓고 (무관의 복식을 묘사한 듯?)

무지개 서린 금대엔 붉은 꽃이 빙 둘렀네.

 

-西垣: 당송 시대 중서성의 별칭. 궁궐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 서쪽 성.

-山戎: 고대 북방 민족의 이름. (주로 하북성 거주)

 

犀弓鐵鎧環精猛,

直擣王庭熄邊警.

殺氣霜凋蓋馬山,

軍聲雷動先春嶺.

무소 뿔로 만든 활과 철갑 옷 입은 정련된 군사를 대동하고

단숨에 왕정을 공격하여 변방의 경계거리를 없애리라.

살기는 서릿발저처럼 개마산을 얼리겠고

군대의 소리는 우레처럼 선춘령을 뒤흔들리라.

 

佇看狐鼠攝威弧,

留犁服匿爭來趨.

若置 [一作固] 臨邊三大鎭,

何難解瓣五單于.

여우와 쥐떼 위엄 서린 활에 떨어 피할 곳 찾겠고

유리(숟가락) 복닉(술그릇) 앞다퉈 달려와 붙좇겠네.

만약 변방에 세 개의 큰 진을 설치한다면

다섯 선우를 해산하여 다스리기 뭐 어렵겠나.

 

-유리복닉: 유리는 흉노 선우가 쓰던 밥숟갈, 복닉은 흉노의 술그릇

-五單于: 월사집, 동명집에도 언급됨. 호한야(呼韓邪)ㆍ도기(屠耆)ㆍ호게(呼揭)ㆍ거리(車犁)ㆍ오자(烏藉)의 다섯 선우가 있다. (월사집 이상하 선생의 주석)

 

安攘大計在劈畫,

況是扶顚富籌策.

刷恥終豎執平旗,

勒功須鑱尹瓘石.

백성을 안정시키고 오랑캐를 물리칠 큰 계획과 모략 있으니

하물며 [변방] 보전할 계책이 풍부함에랴.

치욕 씻어 마침내 집평기를 꽂겠고 (?)

윤관의 돌에 그대의 공을 새기게 되리.

 

-安攘: 환난을 없에고 천하를 안정시킴.

-劈畫: 劈劃. 모략.

 

我衣之華誰置憂,

貂蟬自古出兜鍪.

二十四考待追郭,

萬八千戶行封留.

내 옷 빛남이여 누가 근심하겠나.

초선(고관의 의복)은 자고로 도무(장수의 투구)에서 나온다네.

스물 네 번 고시를 주관한 곽자의의 공적을 따르리니

장차 만 팔천호의 유후에 봉해지리라.

 

-곽자의가 중서령으로 고시를 24회 주관한 것을 말한다.

-장량이 유후에 봉해진 것인데, 확실치 않으나 유 땅이 18천호였던 듯하다. (신호열 주석)

 

野夫早識荊州面,

人生安得長相見.

北風吹髮日西沈,

眼斷關雲淚如線

야인들은 일찍이 형주의 얼굴을 알았지만

사람이 살아감에 어찌 길게 서로 볼 수 있겠는가.

북녘 바람 불어오고 서산에 해 지니

관산 구름 아스라 하여 눈물이 실처럼 흐르도다.

 

-형주의 얼굴을 알다: 이백(李白)이 일찍이 자기를 천거해 달라는 뜻으로 당시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던 한조종(韓朝宗)에게 보낸 편지에 제가 듣건대 천하의 담론하는 선비들이 서로 모여서 말하기를 태어나서 만호후에 봉해지기는 굳이 원치 않고 다만 한 형주를 한 번 알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합니다.白聞天下談士相聚而言曰 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 卷2 與韓荊州書

 

 

*한준겸(1557~1627)

본관은 청주.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인조의 장인. 1580년 별시 문과에 장원.

1610818일에 대사헌으로 임명됨. 918일에 함경 관찰사에 임명됨. 실록에는 인품은 별로 볼 것 없다(原人無足觀)”는 기록이 있음.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발각되자,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을 천거한 일로 연좌되어 투옥. 1595년 유성룡의 종사관이 되었다. 1597년 좌부승지에 올라 명나라 도독 마귀(麻貴)를 도와 마초와 함께 병량의 보급에 힘썼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자 우승지·경기감사·대사성 등을 거쳐, 다음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정인홍과의 알력으로 파직당하였다. 그 뒤 대사헌·한성부판윤 및 평안도와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특히, 함경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소학·가례등의 책을 간행, 보급해 학문을 진흥시켰다. 1613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전리방귀(田里放歸)되고, 1617년 충주에 부처되었으며, 1621년 여주에 이배(移配)되었다. 1623(인조 1) 인조반정으로 그의 딸이 인열왕후(仁烈王后)로 책봉

 

4) 任茂叔 [名叔英]

 

西河敏絶倫, 萬卷悉口誦.

古文洞丘索, 離騷踵屈宋.

서하의 민첩함은 매우 뛰어나 만권서를 모조리 구송하네.

구구팔삭의 고문에 통달하였고 굴원과 송옥의 이소를 잇네.

 

-丘索: 구구팔삭(九丘八索)의 줄임말이다. 九丘는 구주(九州)의 토산물과 풍속을 기록한 책이고, 팔삭(八索)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해설한 책을 가리킨다. 현전하지는 않음.

 

尤工騈驪辭, 徐庾寧有種.

徒誇上林賦, 未第甘泉頌.

병려문과 사에는 더욱 능하니, 서릉·유신의 종자가 따로 있으랴.

상림부는 공연한 과장이요 감천송은 별 것 아니라네.

 

-서릉·유신: 다 같이 문사(文辭)에 뛰어나 당시에 서유체(徐庾體)라 불렸다. 서릉(徐陵, 507~583)은 양진의 문학가로, 이부상서 등을 지냈다. 서효목집이 전해진다. 간문제가 태자 때 서릉에게 옥대신영을 편찬하게 했다. 유신(庾信, 513~581)은 육조 시대 최후를 장식한 문인으로 당 율시의 선구가 되는 작품을 썼다. 저서로 庾子山文集이 있다. 이백(李白)의 청신성(淸新性)과 두보(杜甫)의 침울성(沈鬱性)이 상통했다고 함. 북주에 사신으로 가 장안에 머무는 동안 양나라가 멸망했는데, 북주에서는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표기장군개부의동삼사로 삼았다.

-상림부·감천송: 상림부는 사마상여가 지었고, 감천송은 양웅이 지은 감천부를 가리킨다. (원주)

 

中原析藏譜, 百王剖紹統.

洞曉極廣深, 掌故行需用.

중원의 장보를 파헤치고, 백왕의 통서를 열어보였네

뚫어지게 알아 극히 깊고 넓으니 장고(掌故)는 장차 쓰이겠구나.

 

劇論恣貫穿, 明核吾當恐.

交情指靑松, 霜雪期相共.

격렬한 논변은 분방하여 융회관통하였고, 명확한 고증은 내 두려워할 바라네.

사귄 정 푸른 소나무를 가리키니, 눈서리를 함께 나길 기약하네.

 

*임숙영(1576~1623)

풍천 임씨.

1601년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10년 동안 수학하였으며, 유생들의 상소가 거의 임숙영의 손에서 나왔을 만큼 논의가 뛰어났다고 한다. 1611년 별시문과의 대책(對策)에서 주어진 이외의 제목으로 척족의 횡포와 이이첨(李爾瞻)이 왕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존호를 올리려는 것을 심하게 비난하였다. 이를 시관 심희수(沈喜壽)가 좋게 보아 병과로 급제시켰는데 광해군이 대책문을 보고 크게 노하여 이름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몇 달간의 삼사의 간쟁과 이항복(李恒福) 등의 주장으로 무마, 다시 급제되었다.

1613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무옥인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정청(庭請)에 참가하지 않았다. 곧 파직되어 외방으로 쫓겨나 광주(廣州)에서 은둔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특히 정주학(程朱學)에 통달하였고, 고문(古文)에 힘써 중국 육조(六朝)의 사륙문(四六文)에 뛰어났다. 특히 통군정서(統軍亭序)는 중국학자들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 한다. 저서는 소암집(疎菴集)이 있다. 글씨를 잘 썼다고 하나 남아 있는 필적은 많지 않다.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집필자 이승연)

 

-참고

택당집 별집 6, 사헌부지평 소암 임군 묘지명 (司憲府持平疏菴任君[叔英]墓誌銘[幷序])

 

3) 奇獻甫 [名允獻]

 

君是相公弟, 癯然若寒品.

少小力古詩, 諷詠忘食寢.

그대는 재상의 아우인데도 여윈 모습이 가난한 사람같네.

젊을 때부터 고시 짓기를 노력하여 침식을 잊고 시를 읊었네.

 

-寒品: 출신이 한미한 사람.

-少小: 나이가 어리다. 나이가 어린 사람.

 

有時得眞味, 如酌甘泉飮.

大篇倏聘驥, 小章燦摛錦.

때로 시의 진미를 얻게 되면 감미로운 샘물을 마시듯

대작에는 말달리는 기세가 있고 단소한 시편은 비단을 진열한 듯 찬란하구나

-甘泉: 감미로운 샘물. 순자에 용례가 있음.

-摛錦: 비단을 포진해 놓음. 반고의 서경부에 나옴.

 

駱宋肩欲齊, 何李舌還噤.

窮途只索米, 厚誼誰捐廩.

낙빈왕·송지문은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고, 하경명·이몽양도 도리어 입을 다물리라.

궁한 신세 그저 쌀을 찾는데 곡식 주는 후의 보일 자 누구인가.

-: 입다물 금

-捐廩: 곡식 기부하는 일.

 

同調善浮沈, 知君吾最甚.

數來可唱酬, 乾坤容伏枕.

동지들은 곧잘 이랬다저랬다 하지만, 그대를 아는 것은 내가 제일

자주 와서 창수할지니, 천지는 약골을 용납하는 법이거든.

 

-同調: 지조나 주장이 같은 사람.

-伏枕: 시경 陳風澤陂에 나옴. “寤寐無為輾轉伏枕후에는 병약하거나 연로하여 오랫동안 병상에 누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기윤헌 (1575~1624)

행주 기씨. 기준의 증손. 조부는 기대항. 형은 기자헌, 어머니는 임백령의 딸.  1605(선조 38)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08년에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가 되고, 광해군 때는 공조좌랑·군기시정(軍器寺正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장령(掌令안악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17(광해군 9)에 형인 영의정 기자헌이 광해군의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론에 반대하여 유배될 때 형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그 뒤 진사 이건원(李乾元)이 서궁폐출(西宮廢黜)에 반대한 이각(李覺)과 함께 처형하자고 주장하여 수차에 걸쳐 국문을 받았으나 뚜렷한 실증이 없어 방면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오히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제거할 때 동조하였다는 죄목으로 국문을 받았고, 1624(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과 내응하였다는 혐의로 온 집안이 추국을 받아 끝까지 불복하다가 형이 먼저 죽고, 그 뒤 임강(林茳)과 더불어 장살되었다.

 

 

2) 趙善述 [名纘韓]

 

東吳有機雲, 君學最博洽.

浩蕩極文工, [一作功] 森然有古法.

동오에는 육기와 육운이 있듯

그대의 학문이 가장 넓고 넓구려.

호탕하게도 문장이 극히 공교로우니

옛 법도를 엄숙히 갖추었구나.

 

-육기(261~303): 서진의 문인. 수사에 중점을 두고 대구의 기교를 살려 육조 시대의 화려한 시풍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문부는 문학 비평의 방법을 논한 내용. 진서54에 육기전이 있다.

-육운(262~303) : 303년에 육기가 팔왕의 난에 연루되어 사형에 처하게 되자 육운도 연좌되어 죽었다. 소주 출신.

 

瑩瑩鷿鵜膏, 龍淵初出匣.

屈賈壘初劘, 班張陣新壓.

초롱초롱 벽제 기름

용연검이 막 갑 속에서 나온 듯.

굴원과 가의의 성채같은 작품들을 처음부터 박살내고

반고와 장형의 진 같은 작품들을 새로 제압했네.

 

-벽제고(鷿鵜膏): 벽제의 지방. 옛 사람들이 이 지방을 검에 발라 녹슬지 않게 했다고 한다. 소식의 謝曹子方惠新茶, 서위의 贈呂正賓長篇등에 용례 있음.

-용연(龍淵): 옛 검의 이름. 전국책에 나오는데 등사(鄧師), 완풍(宛馮), 태아(太阿)와 병칭된다. 구야자(區冶子)와 간장(干將)이 만들었다고 하는 춘추 시대의 보검이다. 전국책(戰國策)용연검(龍淵劍)과 태아검(太阿劍) 등 명검은 모두 육지에서는 말과 소를 베고, 물에서는 고니와 기러기를 베며 적을 상대할 때는 견고한 갑옷을 벤다.(鄧師宛馮龍淵太阿皆陸斷馬牛水擊鵠鴈當敵即斬堅)” 하였다. 戰國策 韓策1땅에 묻혀 하늘의 두우(斗牛) 간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뇌환(雷煥)에 의해 발굴되었다고도 한다. 晉書 張華傳

-장형(78~139): 천문음양에 뛰어났다고 한다. ‘二京賦’, ‘歸田賦등이 유명. 하간왕의 재상으로서 호족들의 발호를 견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嗤彼白挺(>), 能攖水犀甲.

吾遊季孟間, 力薄身操鍤.

저 백정의 무리들 비웃으니

능히 물소의 갑옷과 겨루겠네.

나는 어정쩡한 수준이라서

역량이 모자라 몸소 삽을 잡아야 하네.

 

-白珽(1248~1328): 원나라 전당 사람. 경사(經史)를 비롯하여 시()ㆍ서()에도 모두 뛰어났다. 저술로 湛渊集8권이 있다. “월천음사라는 시사를 조직했다고 함.

 

-(): 두르다

-水犀甲: ()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소 가죽으로 만든 갑옷으로, 아주 단단하다고 한다. 소식(蘇軾)팔월십오일간조오절(八月十五日看潮五絶)시에 어찌하면 부차의 무소 갑옷 입은 군대를 얻어, 삼 천 병력의 강한 쇠뇌로 조수를 쏘아 낮춰 볼꼬.[安得夫差水犀手, 三千强弩射潮低?]”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0

-계맹간: 계손씨(季孫氏)와 맹손씨(孟孫氏)의 중간이라는 말로, 중간 정도의 예우(禮遇)를 뜻한다. 예기(禮記)미자(微子)제 경공(齊景公)이 공자(孔子)를 기다리며 말하기를 계씨(季氏)와 같이는 대우하지 못하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 대우는 하리라.’고 했다.” 하였다.

 

賞其洞機鈐, 詞盟許同歃.

肯似諸葛公, 雍容着顏袷.

그가 기지에 통달했음을 완상하면서

사단(詞壇)의 맹혈(盟血)을 함께 발랐네

어찌 저 제갈공이

점잖게 도복 입은 모습과 같겠나.

 

-機鈐: 猶機智機謀

-제갈공: 제갈양은 군중에서도 항상 윤건(綸巾)을 쓰고 도복을 입은 채로 군사를 지휘하였다.

-(): 두 겹으로 지은 옷.

 

*조찬한(1572~1631):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 1601(선조 34) 생원시에 합격,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에 임명되어 호남·영남 지방에 들끓는 도적의 무리를 토평,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예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동부승지로 전임되었다. 광해군 때에는 상주목사를 지냈고, 인조반정 후 형조참의에 제수되고 승문원제조를 겸직하였다.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였으며,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나 초한 육조(楚漢六朝)의 유법(遺法)을 터득하였다. 말년에 서도를 즐겨 종왕(鍾王: 鍾繇王羲之)의 글씨에 비유되었다고 한다. 권필(權韠이안눌(李安訥임숙영(任叔英) 등과 교우하였으며, 후진으로 이경석(李景奭오숙신천익(愼天翊) 등이 있다. 장성 추산사(秋山祠)에 제향되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시조 2수가 전한다. 현주집155책이 규장각 소장으로 김은정 선생의 해제를 보시오. 고전번역원 현주집 해제는 김성애(1999).

 

후오자시

後五子詩 [石洲云, 比諸前五子詩, 亦號軒輊, 序及詩一篇, 失於兵火, 一人未知爲誰.]

석주가 말하길, 전오자시에 비하여 또한 막상막하다.서문에서 말한 시문과 한 편은 병화에 일실되었으므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1) 鄭時望 [名應運]

時望善談詩, 徹曉聲嘐嘐.

淸或企襄陽, 苦則如孟郊.

정시망은 시 얘기를 아주 잘하여

새벽이 되도록 목청도 크구나.

맑음()은 양양 맹호연을 바라볼 만하고

심각함()은 맹교에 비하겠네.

 

-嘐嘐: 맹자 진심 하에 나옴. “何以謂之狂也其志嘐嘐然古之人古之人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趙岐注嘐嘐志大言大者也.”

-襄陽: 양양 출신인 맹호연을 가리킨다.

 

搜奇思入妙, 未免煩推敲.

跨馬出覓酒, 所至皆傾庖.

기이함을 추구하여 생각이 묘한 경지에 들어도

퇴고의 번거로움은 못 면하네

말을 타고 나가서 술 찾으니,

가는 곳마다 모두 주방일세.

 

醉扶行欄街, 不卹兒童嘲.

鄙夫早綰帶, 有如漆投膠.

거나하게 취하자 거리를 쓸며

아이들의 조소에도 아랑곳 않네.

보잘것 없는 이 몸이 일찌감치 친교를 맺었으니

아교칠 한 듯한 우정이네.

-行街: 大路.

 

峨洋貴賞音, 世途皆利交.

且以固詩社, 尙口從讙呶.

아양곡은 지음을 귀히 여기는데

세상에선 모두 이익을 보아 사귀네.

장차 굳은 시사를 통해서

떠들어 대는 말을 따를 밖에.

 

-아양귀상음: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뜻을 고산(高山)에 두자, 종자기가 아아(峩峩 높다)해서 태산 같다.” 하더니, 백아가 뜻을 유수(流水)에 두고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양양(洋洋)해서 강하 같다.” 하였다. 아양곡이란 아아의 아() 자와 양양의 양() 자를 딴 것이고, 지음은 백아가 탄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가 알아들은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지기지우를 의미한다.

-尚口: 입만 살아서 말하다. 주역 곤괘 단사. 有言不信, 尙口乃窮也. 孔穎達疏處困求通在於修德非用言以免困徒尚口說更致困窮”(한갓 구설만 믿어서 다시 곤궁하게 된 것)

-讙呶(환노): 喧嘩叫鬧。《小雅賓之初筵載號載呶毛傳號呶號呼讙呶

 

5)

舁束(>)腰鼓置中筵, 得紅槌彩袖翩.

催拍急簫謳井邑, 八盤初轉響塡然.

요고를 떠메와서 잔치 자리에 놓고

차례로 붉은 채로 두들기니 채색 소매 펄렁펄렁

빠른 박자 급한 퉁소로 정읍을 노래하니

팔반이 처음 돌자 소리 둥둥 드높구나.

 

-舁: 마주들 여

-腰鼓(요고): 허리가 가늘게 생긴 타악기의 하나. 장구보다 훨씬 작다. (장구 비슷하게 생겼음) 요고는 현존하지 않으나 고고학 자료에 많이 나온다. 요고의 양쪽 가죽을 두 손으로만 치고 채로 치지 않는다.

-輪: 이 글자는 한시에서 늘 문두에 나오는데 어조사 같은데 정확히 어떤 뉘앙스인지 모르겠다. 

-槌: 망치 퇴. 망치 추. 

-簫: 피리 소. 

-정읍: 井邑詞의 준말. 舞鼓에 맞추어 부르던 삼국 시대 속악(俗樂)의 창사(唱詞)이다.

-八盤: 미상.

-塡: 북소리라는 뜻이 있음. 

 

6)

沈香山底碧蓮開, 雙鶴翩翾去却回.

跳出彩娥相對舞, 繡衫將押處容來.

침향산 밑바닥에 푸른 연이 피었는데

두 마리 학은 날개치며 갔다 도로 돌아오네

채아가 뛰어나와 마주하여 춤을 추니

처용의 비단 저고리 끌어올 모양이군

 

-沈香山: <무용> 향악 궁중무를 출 때 쓰는 산 모양의 기구. , , 부처, 사슴, 잡상 따위를 만들어 붙이고 물감칠을 하였다.

향악정재(鄕樂呈才)에 쓰는 산 모양의 무구(舞具). 교방가요(敎坊歌謠) 공연 때 침향산·지당(池塘)의 도구를 설치한다. 침향산 앞에 화전벽(花甎碧)을 깔고 제기(諸妓) 100명은 침향산 좌우에 갈라선다.

향악정재에 쓰인 무구의 하나. 지당구(池塘具)와 함께 교방가요에 쓰인 심향산은 나무판자를 써서 산()의 형상을 만든다. 앞뒷면에는 가목(椵木)으로써 봉우리를 새겨 붙인다. ·(승불(僧佛사슴·잡상(雜像)을 만들어 산 모양의 한 곳에 붙이고 채색하고, 앞면에는 연못을 만든다. 난간 좌우에는 화병(花瓶)을 설치하여 구슬을 갖춘 모란을 꽂고, 안에는 큰 연꽃통을 설치하며, 그 밑에는 바취통을 설치하여 사방으로 끌도록 만든 무구의 그림은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8에 전한다(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翩翾(편현): 가볍게 나는 모양(輕飛貌) 文選張華鷦鷯賦>》:育翩翾之陋體兮無玄黃以自貴劉良注翩翾小飛貌

 

7)

紅門斜結綵橫樓, 素手當中擲繡毬.

驚着兩庭人喝采, 向簾來謝奪頭籌.

홍문에 비스듬히 묶어 놓은 채색한 비단이 누대 옆에 비꼈는데

하얀 손결 알맞게 수구(繡毬)를 던지누나

두 뜰을 놀래키니 사람들은 갈채하고

주렴 밖에 와서 치사하네 두주를 뺏었다고

 

-두주: 제일 첫머리의 산가지. 어떤 기예를 겨루어서 먼저 승리를 거둔 것.

 

8)

敎停雜部奏淸絲, 側近襄州小管吹.

曲徹彩雲流不得, 大娘初唱鷓鴣詞.

잡부(雜部)를 멈춰놓고 청사(清絲)를 연주하니

양주곡을 연주할 즈음엔 작은 피리도 따라 부네

현란한 구름 꿰뚫어 흐르지 못하지만

대랑(大娘)도 비로소 자고사를 부르네.

 

-잡부, 청사: 둘다 곡명인 듯한데,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미상. 

-襄州: 악곡 이름. 양주곡(梁州曲)을 말하며, 일명 양주(涼州)라고도 한다. (근거?)

-大娘: 당나라 때의 교방 기녀로 검무에 뛰어났던 公孫大娘을 가리킨 듯하다. (근거?)

-鷓鴣詞: 당나라 교방의 곡명. 일명 山鷓鴣’. 樂府詩集近代曲辭二鷓鴣詞有唐李益一首李涉二首李益所作曲辭,《全唐詩卷二八三題作山鷓鴣詞》,題下注曰一本題上無參閱任半塘唐聲詩下編格調一》。

 

*허균이 명나라 여러 척독집(능씨, 황씨, 도씨, 서씨)을 발췌해서 장여림의 고척독 뒤에 붙였다고 한다. 양신과 왕세정이 척독집을 만든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는 자부가 드러나 있다.

 

양용수(楊用修, 楊愼. 1488~1559)적독청재를 저술하였고, 왕원미(王元美)가 그것을 증광하였으니, (-山陰) 장여림(張汝霖, 1588~1625) 씨는 그들의 두 책을 합쳐서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을 뽑아 고척독이라 하였는데, 뽑은 것이 간략하면서도 곡진하여 명징하게도 천하의 이목에 대응할 만한데, 진실로 이미 집집마다 전송되고 있다.

 

우리 명나라 여러 대가들의 글은 척독이 가장 훌륭한데, 그것을 모은 이로 능씨(凌氏)ㆍ황씨(黃氏)ㆍ도씨(屠氏)ㆍ서씨(徐氏)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광범위하게 찾고 끝까지 더듬어서, 한데 모아 거질을 만들었다. 그 책들을 열람해 보면 마치 병기 창고에 창이며 갑옷 등이 삼엄하게 둘러 나열해 있는 것과 같고, 보물 상점에 대패나 목난이 진열되어 있는 것과 같으며, 거대한 파도가 하늘 높이 치솟는 모습과 같으니, 참으로 장관이다. 다만 유감인 점은, [이들의 척독집은] 단사·척언으로 이치의 근원을 곧바로 깨뜨리거나, 독자의 뜻이 절대적으로 동의하도록 하는 점이 언어 표현 너머에 있게 한 점으로 보면 고척독에 비하여 약간의 부족함이 있다.

 

내가 한가할 때 그 척독집들을 다 꺼내서 그중 단사·척언으로 옛 사람의 문장에 필적할 만한 것들을 취해 별도로 1책을 만들되 4권으로 나누고 명척독이라 이름하여 장여림씨의 고척독후면에 덧붙였으니, 아마도 양신과 왕세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楊用修作赤牘淸裁, 王元美廣之, 越張汝霖氏合二書, 而最其秀者爲古尺牘. 所取簡而盡, 犁然當天下之目, 固已家傳戶誦之矣. 我明諸家尺牘最好, 而彙之者如凌氏黃氏屠氏徐氏, 皆博訪而搜極之, 裒爲大編. 覽之如入武庫, 矛戟鎧甲, 森然而環列, 如寶肆陳大貝木難, 如巨浸稽天然, 信偉觀矣. 獨恨其單詞隻言, 直破理窽, 而折伏人意在於言外者, 比古尺牘稍阻一塵. 余暇日盡發諸所彙, 取其單詞隻言足配於古人者, 別爲一書, 分四卷, 名曰明尺牘, 以附張氏後, 庶不失楊王之旨云.

 

*적독과 척독은 같은 말임. 

*장여림은 회계의 산음 사람이라 '월'이라 칭한 것. 

*포인트는 능씨, 황씨, 도씨, 서씨의 책에 대한 유감, 그 척독집 중 좋은 것을 뽑아 만들었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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