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노경희(2006), 허균의 중국문단 접촉과 시선집 편찬 연구

-노경희(2015), 세설신어보의 조선과 에도 문단의 출판과 향유층 비교

 

*리딩

-곽정례(2011), 허씨 오문장가의 문학적 배경과 활동에 대한 연구, 경희대 박사학위논문. 

-임유경 2015 조선중기 한문우언산문 연구 (이대박사) (대략 훑음)

-안나미(2018),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대한 고찰 -만명 유행 현상과 관련하여

-안득용(2019), 「도문대작(屠門大嚼)」의 성격과 성립 배경에 대한 시론(試論)

 

*balm

풀잎관, 241~381 (140쪽) 1시간. 

[vsi] comparative literature, 2장 초반부

 

*국조시산

-도봉사 (道峯寺, 羅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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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작업 5H

기타 리딩 2H 4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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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슈클라와 버나드 윌리엄스  (0) 2019.01.25

24~25(월)

-이규운(2010), 허균의 문장론과 그 구현양상, 성신여대 박사논문: 부분 독서

 

25일(화)

*정리

-이규운(2010), 허균의 문장론과 그 구현양상, 성신여대 박사논문: 완독 후 정리

 

*리딩

-노경희(2006), 허균의 중국문단 접촉과 시선집 편찬 연구

-노경희(2015), 세설신어보의 조선과 에도 문단의 출판과 향유층 비교

-김홍대(2004), 주지번의 병오사행과 그의 서화 연구: 후대에 주지번의 글씨라고 알려진 것들이 주지번의 글씨일 수 없는 이유. 

 

-성소부부고 권2 광록고 일람. (허균의 독서 이력)

-안나미씨 박사논문을 집에서 프린트 하기로 함. 

 

*balm

-Ben Hutchinson, VSI, Comparative Literature

-콜린 맥컬로, 풀잎관, 이틀간 240쪽까지. 

 

*국조시산

-최수성의 망천도, 나식의 여강

컴퓨터로 말고 매일 손으로 두 장씩 써보라는 조언이 있었는데, 새해에는 그걸 해볼까 싶기도 하다. ucla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듣고 알려줬는데, 언젠가 한동안 그래서 이 비슷한 걸 해본적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안 하게 됐지. 글쓰기에 도움되는 조언들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그 중에 뭐라도 해볼까 싶다. 올해는 이 실어증을 넘어서 논문 쓰는 (안정적 속도로 안정적 퀄리티를 내는) 인간이 되고 싶다. 

오늘 감독하면서 손으로 페이퍼 한 페이지에 창작 비슷한 걸 하다보니까 문득 그 생각이 났다. 효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손으로 뭔가를 쓰는 도중에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서. 그리고 엊그제 포콕선생의 손글씨 예찬도 기억이 나고 해서. 

2019.1.27.01:00-01:02. 2'

주디스 슈클라와 버나드 윌리엄스는 일단 내 취향에 맞고, 상당히 정신차린 말을 한 사람이고, 저작도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거듭 인용이 되는데 한국에는 신기할 정도로 번역이 안 되어 있다. 짧은 에세이 한 편이라도 언제 기회가 되면 내가 해볼까 싶기도 함. 

학자 중에는 J.G.A.Pocock이나 알란 블룸 글이 번역이 없다.

마놀라 다기스나 A.O.Scott 글도 번역이 있을 법 한데 없고. 

2019.1.25. 22:25-30. 5.

한유라는 사람이 얼마나 투덜쟁이인가 하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책을 짓는 사람에게는 사람의 화가 있지 않으면 하늘의 화가 내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고 가볍게 짓겠는가(夫爲史者는 不有人禍면 則有天刑하니 豈可不畏懼而輕爲之리오)"라거나, "나는 나이와 의욕이 쇠퇴하여 스스로 분발할 수 없다(僕年志已就衰退하여 不可自敦率이라)"라거나, 잘난 네놈이나 잘해 봐라는 식으로 "천한 나는 그대의 훌륭한 뜻을 거역할 수 없으니 장차 몸을 이끌어 떠나갈 것을 도모하려 한다.(賤不敢逆盛指하여 行且謀引去리라)" 운운한적이 있다. <답유수재논사서>라고 하는 글에 나오는 말이다. 

유종원도 대꾸하기를 "편지를 보니 사사로운 마음에 심히 기쁘지 않노라" 로 시작해서 한말씀 하시는데, 고문진보의 편집자는 일단 유종원 편을 들면서 공격하고 논하는 체제가 침착하고 통쾌하다느니, 한유가 잘못을 깨닫고 결국 역사서를 지었으니 붕우 간에 권면하는 것의 효험이 이와 같다느니 하는 식의 훈화 말씀을 늘어놓았다. 

이 두 글을 2월 초에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의견차의 핵심이 무엇이었는가. 그와 더불어 피터볼 등등이 썼던 Ways with Words나 피터볼 본인의 This Culture of Ours가 슬슬 다시 등판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동방미디어>라는 사이트에 <고문진보> 원문과 번역이 조건없이 제공되고 있다. 

2019.1.25.12:20-30. 10'

1. 간밤에 내 논문을 위해 뭔가를 조사하다가 <사상계>라는 잡지를 이해하는 것이, 현재 한국 내 문학제도의 관행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iss에 들어가 보니 <사상계>에 대해서 상당히 연구가 많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2. 사상계는 <동방미디어>라는 사이트에서 그냥 (도서관 학외접속 없이)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세로 쓰기 크리가 있다는 것이 좀 그렇긴 한데. 

3.1953년대 사상계 목록을 죽 보니까, 당시에는 해외 문단의 critical essay 같은 것을 정말로 한줌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현재 한국의 문예지라는 것은 더더욱 북한화(=고립화) 된 게 아닐까. 

4. 학술서가 많이 번역된다고 능사가 아니다. 일상어나 저널리즘의 언어라는 저변 위에서 학술 언어가 발전하는 것일텐데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한국은 기형적인 구조가 있어서 그런지 일상어나 저널리즘의 언어를 충분히 번역해 본 적이 없는 빈곤한 토대 위에서 학술서만 생뚱맞게 많이 (그것도 충분히 많이는 아니지만), 일상어나 저널리즘의 언어 번역의 저변과 거의 연관을 맺지 못한 채로 번역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눈대중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런 현상의 폐해는, 한국어에서는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복잡한 구문을 차근차근 옮기는 경험이 collective한 차원에서 축적되지 못한 채로 (내가 '번역어 문장들의 collective accumulation'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현상에 대해서는 시미즈 이쿠타로, <논문 잘쓰는 법> 1장 참조) 학술서만 번역되다 보니 질낮은 번역이 범람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이 낮지 않더라도, 일상어나 저널리즘의 언어와 유리된 고립된 언어로서의 학술어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심지어 꼭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또 완전히 유리되는 것도 그 나름의 폐단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번역을 낳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5. 늘 그렇듯이 남이사 어떻게 살든 솔직히 내 알바 아니고, 그래서 나만의 아카이브라도 만들어 보면 어떠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만들어 왔던 지난 기록을 돌아보니 마놀라 다기스, 에이오스콧 같은 사람이 주옥 같은 영화 비평을 많이 썼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볼 수 있겠던데, 그것들을 하루에 단 한 단락이라도 내가 번역을 해 보면 어떠려나. 나 자신의 pleasure를 위해서. (사실 어제 한 단락 해보았다)

2019.1.25. 12:10-20. 10'

*초여름에 만난 친구 k가 최근 한문학 논문 가운데 Y의 논문이 훌륭하다고 했다. Y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어서 연락해서 박사논문을 받았고, 8월에 해 떠 있는 시간 중에 매일 틈틈이 읽어서 그 한 권을 일단 일독했다. 19세기 전반인가 후반 연행록을 대상으로 한 논문이고, 조선 내 당색 별로 중국 가서 접촉한 인사가 다르다고 주장한 논문이었다. (저는 뭐랄까, 이쪽 업계의 외부인 비슷한 사람이라 논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읽고서 개인적으로 저자 Y에게 가서 물어본 바에 의하면 노론과 남인이 중국 가서 만난 사람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까지 다르지는 않다고 했다.(당연히 이건 논문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다. 만난 사람이 달랐어도 만나고 나서 말한 내용이 딱히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내가 개인적으로 물어본 것.) 나로서는 이게 어안벙벙 포인트였다. 조선인들이 역시 그렇지 함과 동시에, 그렇다면 당색 별로 만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의미한 노력을 했다고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시 조선 엘리트들은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도 결국은 각기 다른 사람에게서 대동소이한 것만을 받아온다, 이런 함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했다. 

아편전쟁에 관해 연구한 폴라첵과 일본인 여성 학자의 연구가 그 논문의 내러티브와 관련된 주요 레퍼런스였는데, 거기서도 '그럼 그렇지' 포인트가 있었다. 임칙서가 아편 전쟁의 핵심인물이 아니라는 주장. 

"중향보 한 부가 내 마음에 있지"라는 말이 인상적인 문장이었음. 농암 형제(였나?)의 '조선 연행록은 대동소이하다' 같은 투덜거림도 깨알같더라. 

2019.1.25.12:00-10. 10'

2014년이었던가, 그때 구글에서 아렌트 생일 기념 로고를 내걸었던 적이 있다. 그 로고를 타고 들어간 독일의 어느 텔레비전 대담프로에서 아렌트가 한 시간 정도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다. (심지어 그 한 시간짜리 영상을 전사한 것을 책으로도 만들어 팔던데 흥, 돈 쉽게 번다 싶더구만) 거기 보면 아무리 독일 사람들이 유머엔 젬병이라지만 우리 아렌트 여사는 유머러스 하다고 느꼈던 포인트가 있었다. 

남자 진행자 왈, 당신이 우리 프로에 처음 출연한 여자 철학자다, 하자 아렌트 왈, 글쎄 난 내가 여자인 것도 딱히 신경 안쓸 뿐더러 내 스스로가 철학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 술 더 뜨는게) 나는 철학에서 시작했지만 그거랑 완전히(once and for all) 작별했다,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자 진행자의 질문,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걸로 뭐가 바뀌길 바라느냐,라고 하자 그 대답이 나에겐 압권이었던 게, 아렌트 왈 내가 방금 여자인 거 무심하다고 말했어서 좀 웃기지만, 꼭 남자들은 뭘 하면 그걸로 뭘 바꾸려들더라. 난 그런 거 상관 안해, 그냥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궁금해서 쓰는 거야. (그리고 여기서도 꼭 한 마디 더해.) 내가 기억력이 아주 좋았으면 난 글 안 썼을거야. 

그런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로 나에게는 "록스타가 나타났다"의 느낌이었달까, 대중음악 공연장에서 청중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심리가 약간 이해가 되었달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저 말이었다고, 역시 내가 기괴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궁금해서 글쓰는 거야. 아멘. 

2019.1.24.21:05-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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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오르가즘을 의식하지 말고 그저 과정에만 집중하라" 이사벨 아옌데 (1967-)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관한 사실도 말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

"만약 글쓰기가 고작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타자기를 내다 버렸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행위다. 작가는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수전 손탁, 1964, <해석에 반대한다>

"글로 쓰인 단어들에는 인간 본성의 가장 고귀한 부분부터 가장 추악한 부분까지 끌어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우리는 핵 에너지나 유전공학을 대하듯이 단어들을 대해야 한다. 여기엔 용기와 신중, 상상력, 정확성이 필요하다. 나딘 고디머.

2016년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것들 중에서. (2016년 알라딘 달력 중에서 발췌했던 듯.) 수전 손탁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이 큰 호감은 없지만, 그래도 저 마지막줄의 질문이 나에게 반향이 컸다. 

2019.1.23.9:15-2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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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쓰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능력이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고 끝없이 적어가는 과정에서만 형성이 됩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생각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끊임없이 적어야 합니다. 6개월간 시간을 잡고 묘사 서술 상념 등 붙드세요.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많이 쓰지 않고 잘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2019.1.22. 10:10-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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