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세설신어 속서연구-세설신어보, 중국어문학논집16, 2001.

 

 

세설신어의 주요 속서는 15에 이른다. 이 논문의 목적은 세설체 연구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그 연구 영역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세설신어보가 주 연구대상, 그 편찬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하씨어림을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2장 세설체 문학의 원류 세설신어

-세설체 문학이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

1) 내용상 요소: 人事에 관한 기록. 신화 전설이나 지괴적 색채가 배제, 현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있을 수 있는 일을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眞人眞事일 필요는 없고, 적당한 과장과 허구가 허용된다. 인물품평에 관한 기록. 세설신어는 고사 전체가 인물품평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품평어가 고도로 함축화된 언어예술성을 보여준다.

2) 형식상 요소. 주제에 따른 편목설정. 세설신어 내 고사들은 서로 직접적 연관관계가 없고, 일정한 편목(주제) 아래, 내용상 유사한 고사들이 모아져 있을 뿐. 하나의 편목 안에 들어 있는 전체 고사를 종합해 보아야만 비로소 작자가 제시하는 주제가 드러나게 되는 것. 이런 구성은 유향의 新序, 설원과 유소의 인물지영향. 고사의 짧은 편폭

3) 묘사적 요소: 인물묘사의 핍진성 언어묘사의 함축성. 단지 몇 글자만으로도 그 사람의 특성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데 뛰어난 표현 역량. 그래서 성어나 경구로 정착된 것이 많다. (등용문, 난형난제, 오우췌월, 옥산장붕, 전신아도, 침석척류, 점지가경)

 

3세설之闕: 하씨어림

하씨어림은 어림이라고도 하며 하량준(1506~1573)이 가정 29(1550)에 지었다. 동생 하량부와 명성을 날렸기에 서진 때 화정의 명사 육기와 육운에 견주었다. 뒤늦게 국자감에 들어가 남경 한림원 공목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귀향. 당시의 대 명사 문징명과 가까운 친구 사이. ‘본색설이라는 曲論의 창시자 중 1. 저작으로 사우재총설 38권 등이 있음.

어림이란 말은 東晉 배계의 어림에서 따왔고 체재는 세설신어를 답습하되 <언지>, <박식> 2편을 추가. 30, 38, 2781조로 되어 있다. 범위는 양한대부터 송원대(1500), 세설신어에 수록된 고사는 제외되어 있다. (세설신어는 양한에서 동진까지 약 300년간) 세설신어 유효표 주처럼 주를 달아 인물의 생평과 관련 고사를 소개했음. 또 각 편 앞에 小序를 두어 편목의 함의와 편집의도 밝힘. 일부 고사 뒤에 자기 논단을 끼워 넣었음.

하씨어림 서문에 따르면 하씨어림은 분명 세설신어의 모방작 또는 속서이지만, 사상 경향에서는 더 이상 현허함과 簡遠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세설신어가 현학시대 문인명사들의 정신을 응축시켜 놓은 것이라면 하씨어림은 심학시대의 색채를 은연 중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하량준 찬, 陳洪·黃菊仲 주(1999), 續世說新語 (天津: 天津人民出版社), 「前言」 2 참조) 왕학 좌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하량준은 인물의 개성과 眞情을 존중했으므로 그가 선별한 인물고사의 성격은 세설신어와 같을 수 없었다. (85쪽) 

문징명이 하씨어림에 서문을 썼음. “품목을 순서대로 나눈 것은 비록 38편이지만, 실정을 궁구하고 요점을 파악한 것은 진실로 오직 언어를 종지로 삼았다. 한 단어와 한 구절만으로도 종종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심원한 생각에 잠기게 하니 깊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진실로 또한 지극한 이치로서 문학과 행의(行義, 품행과 도의)가 깃들여 있는 연못이다라고 했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서는 옛 문장을 채록하고 깎고 다듬어서 새롭게 만들었는데 간결 담박 준일 고아한 정취를 갖고 있다. ... 비록 임천(유의경, 세설신어)에 맞서 함께 千古를 달릴 수는 없지만 모름지기 그 말에는 근거가 있으니 끝내 明人小說이 비할 수 있는 바 아니다.” 

 

4장 세설과 어림의 결합: 세설신어보

1) 편찬자 및 편찬의도

세설신어보: 세설신어와 하씨어림 중 일부분을 삭제하여 합친 것. 산정 작업을 누가 했는가에 대해 세 가지 설이 제기되어 있다.

왕세정 편찬설. 왕세정, 왕세무, 왕태형, 왕사임 청대 장발 등의 서발문에서 확인되고 있다. 목록서로는 청대 황우직의 천경당서목에서 보임. 현재 가장 유력한 설.

명대 사람이 탁명했다는 설. 이 설은 사고전서총목제요에서 제기. 능몽초가 세설신어를 간각하면서 하씨어림을 가지고 세설신어보라는 서명을 짓고 왕세정에게 탁명했다는 설. 방증자료가 없어서 신빙성이 적다.

하량준 편찬했다는 설. 寧稼雨가 제기. 내용에 있어서는 세설신어 외에 하씨어림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하량준을 찬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주장했다. 그런 식이면 유의경도 찬자.

명청대 여러 서발문이 한결같이 왕세정을 지목하고 있다.

 

왕세정, 세설신어보 서. (87)

설에서 삭제한 것은 10분의 2를 넘지 않고, 하씨어림에서 취한 것은 10분의 3을 넘지 않는다. ... 송대의 경학 선생들은 청담이 난을 초래했다고 질책하곤 하지만 강좌에 있어 이 똑같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갑옷과 투구를 몰아내고 유생이 되게 할 것이면, 갑옷과 투구를 몰아내고 청담을 하게 하는 것도 어찌 택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1556년 낭야 왕세정 찬. (하씨어림이 나온지 6년 뒤에 쓴 것.)

 

2) 판본

20권본(선행)4권본(후행)이 있다. 20권본은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을 산정해서 조합해 놓은 것으로 별행본으로 간행.

-20권본 주요 판본

명 만력 13(1585) 장문주 각본

명 만력 14(1586) 태창 왕태형 각 이탁오 비점본.

명간 유진옹·이탁오 비점본

청 건륭 27(1762) 강하 황여림 간 해녕진씨 신간 당 장판본: 장문주교주본 번각.

청 건륭 27(1762) 중간 무청서옥장판: 황여림 보정본과 거의 같음.

청 광서간 (1875-1908) 갈원후소원 각 주인본: 황여림 보정본에 의거하여 중간함.

청간 방 건륭 강하 황씨 간건상본: 방각본으로 추정함.

-4권본은 거의 대부분 세설신어와 합각한 형태여서 세설신어의 고사를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었음. 4권본은 산정한 하씨어림 고사만 수록

명 만력(1573~1619) 장문주 교간 왕세무 비점본: 세설신어 6권과 합각.

명 만력간 각본: 세설신어 8권과 합각.

명 능몽초 개정본: 세설신어 3권과 합각.

청 강희 5(1676) 승덕당 간본: 능몽초 개정본에 의거하여 번각함.

민국 6(1917) 북양인쇄 배인본.

 

-이상 판본을 보면 세설신어보의 간행에 깊이 관여한 사람은 장문주. 사실상 그의 교주 각본이 세설신어보 여러 판본의 모태가 되고 있다. (장문주[1603 전후]는 자가 仲立, 곤산 사람. 명 만력 16(1588)에 거인이 되었으며 임청현 지현을 지냈다. 저작으로 溟池集16권이 있다.)

 

3) 체재

세설신어보 편목은 하씨어림에서 추가한 언지’, ‘박식’ 2편을 다시 삭제하고 세설신어 본래 편목에 따라 36편으로 되어 있음. 왕세정이 서문에서 한 말은 대체로 들어 맞음. 세설신어보는 총 1426조의 고사인데, 세설신어에서 채록한 고사는 849, 하씨어림에서 온 고사는 577.

 

4) ‘세설체 문학상 의의

명대는 세설체 문학 발전에서 중요한 시기. 세설신어의 속서가 가장 많이 나온 시기.

편찬의도는 세설신어 정신의 통시적 구현. “진대 이후의 일인데도 그 점을 잊게 된다. 인물 정보와 역사지식의 최득.

 

5. 세설신어보의 국내 유전

-이의현(영조 때의 대제학) 잡저.

 

-국내에 유입된 세설신어보는 20, 4권본 고르게 수입. 행 연대 알 수 있는 주요 판본.

세설신어보 20: 고려대 소장

명 만력 14(1586) 매서(梅墅) 석거각(石渠閣) 간본

유의경 찬, 유효표 주, 유진옹 비, 하량준 증(), 왕세정 산정, 왕세무 비석(批釋), 장문주 교주, 왕심 교정/ 왕세정 (1556), 왕세무 (1580), 진문촉(陳文燭) (1586), 이지 (1586), 袁褧 舊序 (1535), 동분(董弅) 舊跋(1138)

세설신어보 20: 연세대 소장

명 고오린서당(古吳麟瑞堂) 간본. 刊年 미상

유의경 찬, 유효표 주, 유진옹 비, 하량준 증(), 왕세정 산정, 왕세무 비석(批釋), 장문주 교주/ 왕세정 (1556), 왕세무 (1580), 재지(再識) (1585), 진문촉 서(1586), 袁褧 舊序 (1535)/ 연세대 소장.

세설신어보 20: 정문연·성균관대 소장

청 건륭 27(1762) 무청서옥(茂淸書屋) 간본.

유의경 찬, 유효표 주, 유응등(劉應登) , 하량준 증(), 왕세정 산정, 황여림 보정(補訂) / 진문촉 (1586), 황여림 서(1762)

세설신어보 4(세설신어 8권과 합간) : 고려대 소장

청 강희 3(1664), 광릉옥화당(廣陵玉禾堂) 간본.

유의경 찬, 하량준 보, 정서(程稰) 중정(重訂) / 왕세정 (1556), 정서(程稰) (1664)

세설신어보 4(세설신어 6권과 합간) : 고려대 소장

청 강희 15(1676) 승덕당(承德堂) 간본

유의경 찬, 유준(劉峻) , 하량준 증(), 왕세정 산정, 장문주 교주, 능몽초 고정(考訂) / 표제: 增訂世說新語補, 능몽초 서(1676)

 

-조선시대에는 자체적으로 세설 간행도 했는데 그 특징은 두 가지.

대상이 세설신어가 아닌 세설신어보.

조선 숙종 때 새로 주조한 현종실록자로 간행.

 

-현재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판본

1708(숙종 34)에 현종실록자로 간행된 세설신어보 206책본(연세대)207책본(중앙대, 고려대, 정문연, 성균관대, 간송본) 등이 있다.

이 책은 모두 권수(卷首)에 왕세정 (1556), 왕세무 서(1580), 재지(再識) (1585), 진문촉(陳文燭) (1586), 袁褧 舊序 (1535), 구제(舊題), 동분(董弅) 舊跋(1138), 문징명 하씨어림서(1611), 육사도 하씨어림서, 附釋名, 세설신어보 목록이 차례로 실려 있음.

이어서 세설신어보 권지일아래에 유의경 찬, 유효표 주, 송 유진옹 비, 명 하량준 증, 왕세정 산정, 왕세무 비석(批釋), 종성 비점, 장문주 교주라고 되어 있다.

또 하씨어림에서 뽑아 수록한 고사는 해당 조 바로 위 上欄라고 표시하여 세설신어 고사와 구별해 놓아 일종의 검색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또 일부 고사는 본래 세설신어에 소속된 편목에서 다른 편목으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독자는, 700여명에 이르고 1400여조에 달하는 세설신어보를 더 효과적으로 읽을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음. 그 결과 나온 것이 전체 고사를 등장인물 성씨별로 재배치한 세설신어성휘운분이다. 이런 새로운 형식과 체제의 판본이 국내에서 간행된 것은 당시 지식인들이 얼마나 세설신어보를 탐독 애호했는지 잘 대변해 줌.

 

-현종실록자: 현종실록을 인쇄하기 위해 민간에서 빌려온 낙동계자 35000자와 현종 3(1677)에 새로 주조한 40825자를 합친 것이다. 따라서 1677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인쇄된 책은 낙동계자본, 그 이후에 인쇄된 책은 현종실록자본이다. 주조 솜씨는 정교하지 못하나 글자체는 단아하고 해정하여 7대 실록(고려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실록?)을 비롯한 많은 서적 인쇄에 사용되었다. 또 활자 뒷면이 활 등처럼 속으로 움푹 패였는데 이는 구리의 양을 절약하고 조판할 때 잘 부착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관련논문

노경희, 현종실록자본 세설신어보간행과 유전의 문화사적 의미, 한국한문학연구52, 한국한문학회, 2013.

노경희, 「『세설신어보의 조선과 에도 문단의 출판과 향유층 비교, 한국문화, 72,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2015.

 

박경희, 세설신어 인물품평의 심미의식, 중어중문학29, 중어중문학회, 2001.

박경희, 「『세설신어』 「簡傲를 통해 본 魏晉名士, 중국어문학지16, 중국어문학회, 2004.

박경희, 「『세설신어에 나타난 팬덤 현상, 중국어문학논집84, 중국어문학연구회, 2014.

 

김정숙, 「『세설신어독자 형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 -명대 중엽 홍치년간(弘治年間) 강남 오중문인(吳中文人)의 인물지-, 동방학지17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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