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滄溟集

 

晨霞初絢閬風明

天半蛾眉積雪晴

試向漢庭司馬道

幾人能壓濟南生

 

새벽 노을 막 반짝일 때 낭풍이 밝아오니

하늘에 솟은 아미산에는 쌓인 눈이 개었구나.

한나라 사마에게 시험 삼아 말하노니

제남생을 누를 이가 몇이나 있는지요.

 

*晨霞: 아침 노을

*閬風(낭풍): =閬風巔. 곤륜산의 꼭대기. 楚辭離騷구절에 대한 王逸 注에 근거. “朝吾將濟於白水兮登閬風而紲馬

*司馬: 사마천 혹은 사마상여인데, 번역자(신호열)는 사마천으로 짐작했음. (근거는?)

*제남생: 이반룡(李攀龍, 1514~1570)을 가리킨다. 이반룡이 산동성(山東省) 제남군(濟南郡) 역성현(歷城縣)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반룡은 자는 우린(于憐), 호는 창명(滄溟).으로, 저서에 창명집(30)이 있다. (明史에는 32권이라 되어 있다.)

 

+추가) 창명집에 관한 독후감이지만 사실상 2구에서는 왕세정의 시를 refer한 것이다. 

*天半蛾眉: '아미천반'이라는 시어가 왕세정만흥팔수(漫興八首)가운데 7수에 나온다. 그 시에 야부의 흥취 가시지 않으니(시골 사람 흥이 일면 더 다듬지 않나니) 큰 바다에 바람 불어 붉은 물결 일어나네.(큰 바다에 돌풍 불어 보랏빛 파도 치네) 제남의 아름다운 곳 묻는다면 하늘 높이 솟은 아미산이 눈 속에 보이네.野夫興就不復刪, 大海迴風生紫瀾. 欲問濟南奇絶處, 蛾眉天半雪中看.라고 하였다. 弇州四部稿 卷49이 시에 대해 이수광(李睟光)은 왕세정이 이반룡에게 준 것이라고 하면서 제남은 창명을 가리키니 결구는 아마도 창명에 관해 읊은 것이면서 스스로를 대단히 높게 인정한 것이다.濟南指滄溟, 結句蓋屬滄溟, 而其自許亦太高.라고 하였다. 芝峯類說 卷12 文章部5 明詩

 

 

*明史287

■■李攀龍字于鱗歷城人九歲而孤家貧自奮於學稍長爲諸生與友人許邦才殷士儋學爲詩歌益厭訓詁學日讀古書里人共目爲狂生嘉靖二十三年進士授刑部主事歷員外郞郞中稍遷順德知府有善政上官交薦擢陝西提學副使鄕人殷學爲巡撫令屬文攀龍怫然曰:「文可檄致邪?」拒不應會其地數震攀龍心悸念母思歸遂謝病故事外官謝病不再起吏部重其才用何景明例特予告歸予告者例得再起。(전반기 관직경력)

■■攀龍旣歸白雪樓名日益高賓客造門率謝不見大吏至亦然以是得簡傲聲獨故交殷許輩過從靡間時徐中行亦家居坐客恒滿二人聞之交相得也歸田將十年隆慶改元薦起浙江副使改參政擢河南按察使攀龍至是摧亢爲和賓客亦稍稍進無何奔母喪歸哀毁得疾疾少間一日心痛卒。(후반기의 삶)

■■攀龍之始官刑曹也與濮州李先芳臨淸謝榛孝豐吳維岳輩倡詩社王世貞初釋褐先芳引入社遂與攀龍定交明年先芳出爲外吏又二年宗臣梁有譽入是爲五子未幾徐中行吳國倫亦至乃改稱七子諸人多少年才高氣銳互相標榜視當世無人七才子之名播天下擯先芳維岳不與已而榛亦被擯攀龍遂爲之魁其持論謂文自西京詩自天寶而下俱無足觀於本朝獨推李夢陽諸子翕然如之非是則詆爲宋學攀龍才思勁鷙名最高獨心重世貞天下亦並稱王又與李夢陽何景明並稱其爲詩務以聲調勝所擬樂府或更古數字爲己作文則聱牙戟口讀者至不能終篇好之者推爲一代宗匠亦多受世抉摘云自號滄溟。(시사결성과 후칠자의 성립. 문장은 서한 이후, 시는 천보 연간 이후의 것은 볼 것이 없다고 했고, 오로지 본조에 이몽양이 볼 만할 뿐이라고 했음. 자기들과 의견이 안 맞으면 송학이라고 배척. 왕세정과 결교한 일. 4대 문장가로 불린 일, 시문 스타일. 문장은 특히 난삽했해서 독자가 끝까지 못 읽었고, 좋아하는 자들은 일대의 종장이라 하여 애호되었음.) 

 

*予告: 2.後代凡大臣因病老准予休假或退休的都叫予告

*簡傲: 오만하다.

*勁鷙: 勁健不凡

*抉摘: 1.抉擇擇取

 

 

*이수광의 아들 이민구(李敏求, 1589~1670)동주집2에 실린 다음 시가 참조된다.

 

창명고(滄溟稿)

 

千年作者謾如雲 역대의 작가 구름처럼 많아

一一收藏祕閣芸 하나하나 비각과 운각에 수장하였지

不識峨眉天半語 아미천반의 시어 모르고서

堪從異代起衰文 후대에 쇠한 문장 일으킬 수 있을까

 

-이민구는 1609년(광해군1) 진사시와 1612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서 장원을 했다. 

 

*월정집2

여양군 민백춘 공께서 주청 부사로 연경에 가기에 시를 지어 주다

驪陽君閔令公伯春以奏請副使如京詩以贈行

 

大海峨眉竝一時 큰 바다와 아미산이 일시에 나란하니

主盟文囿倡雄詞 문단의 맹주 되어 웅건한 글 주도했네

代興來哲寧寥落 대를 이어 일어날 철인 어찌 없으랴

鞭弭中原又是誰 중원에서 겨룰 사람 또 누구일까

 

*큰 바다와 아미산: 큰 바다는 왕세정이다. 아미산은 이반룡이다. 왕세정이 일찍이 시골 사람 흥이 일면 더 다듬지 않나니, 큰 바다에 돌풍 불어 보랏빛 파도 치네. 제남의 뛰어난 절경을 묻고 싶으면, 하늘 높은 아미산을 눈 속에 바라보라.野夫興到不復刪, 大海迴風生紫瀾. 欲問濟南奇絶處, 峨眉天半雪中看.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1, 2구는 자신을 비유한 것이고 3, 4구는 이반룡을 비유한 것이다. ‘대해(大海)’는 웅혼한 시풍을 말하고 아미(蛾眉)’는 청고(淸高)한 시풍을 말한 것이다. 靑泉集 卷8 海游見聞錄 文學》 《芝峯類說 卷12 文章部

 

*서영보(徐榮輔, 1759~1816)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2책에도 언급된다.

내가 산속에 있을 때 동해(東海)에 임하여 일출(日出)의 광경을 본 일을 가지고 말하기를 옛날 왕원미는 자신의 시를 회오리바람이 일으키는 붉은 물결로 자처하였고, 우린의 시를 눈 속의 아미산으로 허여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산과 바다에서 노니는 것이 어찌 무턱대고 왕리보다 못하다고야 하겠는가.昔王元美自居以廻風紫瀾 許于鱗以雪中峨嵋 吾兩人山海之遊 何遽不若王李라고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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