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趙持世 (趙緯韓, 1567~1649, 1609년 문과 급제)
髥翁誠國器, 廟肆薦周鼎.
致身自靑雲, 珠玉豈無脛.
염옹은 진실로 나라의 보배로
주나라 솥처럼 종묘에 오름직 해
출세하여 청운의 길에 오르니
주옥이라고 그 어찌 다리 없으랴
-염옹은 서림(徐霖, 1462~1538)의 자호로 조위한을 가리킨 말이다.
-주옥에 다리 없음: 詩文 등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 발이 없이도 잘 유행한다는 뜻이다. 《열자》에 “주(珠)는 다리가 없어도 다니고, 옥(玉)은 날개가 없어도 난다.” 하였다. (열자에 출전이 있다는 말은 확인하지 못했음) *無脛而至: 다리 없이도 돌아다닌다. 즉 훌륭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부르지 않아도 절로 기꺼이 현자의 문에 온다는 것을 비유한 것. 漢孔融《論盛孝章書》:“珠玉無脛而自至者,以人好之也,況賢者之有足乎!”亦作“無脛而來”
平生攻古文, 奏刀經肯綮.
詩歌陰何流, 牋誄岳機騁.
평생 동안 고문에 온 힘 다하여
칼놀림은 긍경을 다 거쳤네.
시가는 음갱(陰鏗) 하손(何遜)의 무리요
잔뢰는 반악(潘岳) 육기(陸機)와 치달리네
-주도경긍경: 주도(奏刀)는 움직이는 칼, 나아가는 칼. 장자 양생주 포정의 고사에서 온 말. 긍경(肯綮)은 근골이 결하뵌 곳으로 역시 포정의 고사에 나온다. “技經肯綮之未嘗,而況大軱乎?(經絡과 肯綮이 〈칼의 움직임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습니까?)”
-陰何: 남조 양나라의 시인 하손과 진(陳)나라의 시인 음갱의 병칭이다. 두보의 〈解悶〉 시에 “시 짓느라 고심한 음하를 자못 배웠노라.[頗學陰何苦用心.]”이라 했다.
-음갱(陰鏗): 남조 진나라 武威 姑藏 사람. 오언시에 능했다. 일찍이 陳文帝가 종종 군신들과 연회를 베풀면서 그들과 시를 지었는데 한번은 徐陵이 음갱을 이 자리에 천거했다. 시의 주제는 새로 지은 안락궁을 찬미하는 것이었는데, 붓을 들자마자 곧장 써냈다.
-하손(何遜): 東海(山東省) 출신. 8세 때 詩賦를 지었다는 조숙한 천재. 20세 무렵에 문단의 거성 范雲에게 詩才를 인정받아,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망년지교가 있었다고 한다. 유효표와 더불어 ‘하류(何劉)’라 불렸다. 청신한 시풍의 가작을 남겼다.
-반악(247~300): 西晉의 문인. 당시의 권세가 가밀의 문객들 ‘24우’ 가운데의 제1인자였다. 육기(陸機, 261∼303)와 함께 서진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병칭되었다. 육기가 논리적 표현에 탁월한 데 대하여 반악은 정서적 표현에 뛰어났다. 철저한 기교주의자로서 감각적인 애상(哀傷)의 시와 산수시(山水詩)의 걸작을 남겨 놓았다. 애처의 죽음을 비통해 하여 지은 《도망(悼亡)의 시》 3수 등이 유명.
-육기: 명문 출신. 동생 육운(陸雲)도 文才가 있어 그와 함께 ‘二陸’이라 불리었다. 20세 때 오나라가 멸망하였기 때문에 고향에 퇴거하여 10년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 후 동생과 함께 낙양으로 나가 당시 지식인의 중심 인물이었던 張華의 知遇를 받았고, 가밀과 함께 문학집단에 가입하여 북방 문인과 교유하였다. 얼마 후, 혜제의 대에 이르러 정국이 혼란하고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이 난에 휘말려 동생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수사에 중점을 두고 미사여구와 대구(對句)의 기교를 살려 육조시대의 화려한 시풍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文賦》는 그의 문학비평의 방법을 논한 내용으로 유명하며, 작품은 《陸士衡集》(10권)에 수록되어 있다.
聲譽日翩翩, 皐禽聽秋驚.
雅契獨知心, 義交鄙刎剄.
명성은 날로 더욱 드높은데
학이 가을 듣고 설레누나.
맑은 결합 홀로 마음 아는데
의로 맺은 사귐은 문경을 하찮게 보네.
-문경지교: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 나오는 말.
收之衆毀中, 恩與生我竝.
山水把辨音, 醍醐許灌頂.
수많은 훼방 속에 거두어주니
그 은혜 날 낳아준 이와 같도다
산수의 지음을 의탁하고
제호탕 정수리에 붓기를 허락하였네.
-제호탕(醍醐湯): 제호탕은 옛 청량제다. 제호탕을 정수리에 부은 것같이 정신이 상쾌하고 깨끗함을 가리키는 말로, 불가에서 지혜를 사람에게 주입시켜 주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뜻이다. ‘醍醐灌頂’이라는 성어가 있음. 여기서는 동지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다; 醍醐灌은 清涼舒適의 비유로도 씀. 그렇게 보면 조위한의 청량한 문풍을 허균이 인정한다는 말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輸君借軒騰, 推我守孤迥.
康濟足餘波, 江湖有煙艇.
그대의 드날림을 빌려주어서
나에게는 고고함을 지키게 하네.
안민 제중(安民濟衆)의 여파가 원만해지는 날
강호의 안개 속에 낚싯배 있으리라.
-軒騰(헌등): 비등함.
-孤迥(고형): 고립됨. 여타의 사물과 멀리 떨어져 있음. 혹은 적막함.
-康濟(강제): 서경 채중지명에 용례 있음. “康濟小民(소민들을 편안히 구제하라)”
-煙艇: 안개와 물결 속의 작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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