惺翁何人 성옹이 누구기에
敢頌其德 감히 그 덕을 칭송하나.
其德伊何 그 덕이 뭔고 하니
至愚無識 지극히 어리석고 무식하단 것.
無識近陋 무식하기는 비루하다 할 만하고
至愚近庸 어리석기는 용렬하다 하겠네.
庸而且陋 비루하고도 용렬하니 (미련하고 고루한 걸)
奚詑爲功 자랑할 일 뭐 있을까. (어떻게 내세울 건가-신호열 역)
陋則不躁 비루하면 조급하지 않고
庸則不忿 용렬하면 화내지 않지.
忿懲躁息 화내는 일 없고 조급함도 없어 (성미 안 내고 성급 멎으면)
容若惷惷 바보 같은 얼굴일세. (겉보기엔 못나 터지지 –신호열 역)
擧世之趨 온 세상이 몰려가는 곳이라면
翁則不奔 성옹은 가지 않지.
人以爲苦 사람들이 괴로이 여기는 일
翁獨欣欣 성옹 홀로 좋아하네.
心安神精 마음 편하고 정신이 깨끗한 건 (마음은 편안하고 정신은 깨끗하고)
庸陋之取 용렬하고 비루한 데서 온 것. (못나 터지고 고루하지만)
精聚氣完 정기가 모이고 기운이 온전한 건 (정기는 뭉쳐서 단단하다네)
愚無識故 어리석고 무식한 데서 온 것. (어리석고 무식하니)
遭刑不怖 형벌을 당해도 두려워 않고
遭貶不悲 벼슬에서 쫓겨나도 슬퍼 않네.
任毀任詈 비방을 하든 욕을 하든
愉愉怡怡 언제나 희희낙락.
非自爲頌 내 자신이 기리지 않으면
孰能頌汝 누가 너를 기려 주랴.
惺翁爲誰 성옹은 누구인가
許筠端甫 바로 나 허균이지. (허균 단보 바로 그일세.)
*詑(이): 으쓱거리다.
*惷惷(준준): 어리석다.
*欣欣(흔흔): 기쁘고 즐거운 모양. 『시경』 부예(鳧鷖, 들오리)에 “旨酒欣欣, 燔炙芬芬(맛 좋은 술로 기쁘고 즐겁고, 불에 구운 고기는 향기롭도다”에 나옴.
*허균의 서재 이름이 ‘성소(惺所: 항상 깨어 있는 곳)’ 였으니 ‘성소에 사는 늙은이’ 혹은 ‘항상 깨어 있는 늙은이’라는 뜻의 ‘성옹’은 여기에서 온 호이다. ‘송’(頌)은 본래 남의 미덕을 찬미하기 위해 짓는 글로, 흔히 4언(言)의 운문으로 짓는다. 자신을 기리는 ‘송을 지은 것도 흔치 않은 발상이고, 명민하고 박식하기로 유명한 허균이 어리석음과 무식함을 미덕으로 내세운 것도 특이하다.
(정길수 역, 2012,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돌베개, 177~178쪽.)
*성소부부고 권14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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