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_성소부부고

산인 사진(謝榛)의 시문집을 읽었다

nicole0301 2020. 9. 9. 15:27

讀謝山人集

 

齊名二子藝通神

亦數宗臣與國倫

誰識中原馳上駟

屬鞬還有眇山人

 

두 거장이 이름 나란히 하니, 예술이 신의 경지에 통했구나

종신과 오국륜을 역시 헤아릴 수밖에.

누가 알리, 중원에선 상사가 달린다면

촉건에는 도리어 이 애꾸눈 산인이 있다는 걸

 

*謝榛(1495~1575): 후칠자 중 한 사람. 16세에 악부시로 고향에서 유명해졌다. 저서로 四溟集10권이 있다. (전자판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음) 어릴 때부터 한쪽 눈이 애꾸였다. 歌詩를 짓는데 치력.

*宗臣(1525~1560): 후칠자 중 한 사람. 강소성 흥화현 출신. 자는 子相 호는方城. 저서로 宗子相集15권이 있다. 초기 시는 이백의 스타일을 모방했으나 잘 되지 않았음.

*吳國倫(1524~1593): 후칠자 중 한 사람. 자는 明卿, 호는 川樓子 혹은 南嶽山人. 호광성 출신. 1550년 진사.

 

*上駟: 가장 좋은 사마(駟馬).

*屬鞬: 오른쪽에 활집을 부착한다[右屬橐鞬]의 준말로 좌전희공 23년 조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하지 못하다. (동개 건)은 말 위에 활과 화살을 꽂아 등에 지는 물건이다. (고전번역원 각주에 희공 14년이라 한 것은 잘못)

-“若不獲命, 其左執鞭弭, 右屬櫜鞬, 以與君周旋.” ([중이가 말했다] 그래도 戰爭을 중지하자는 임금님의 을 들을 수 없으면+ 왼손에는 채찍과 활을 잡고 오른쪽에는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임금님과 한 판 겨루어 보겠습니다)

-中原과 대비되는 지명이어야 할텐데.

 

*明史에서는 모곤 다음에 나옴.

■■謝榛字茂秦臨淸人眇一目年十六作樂府商調少年爭歌之折節讀書刻意爲歌詩西游彰德爲趙康王所賓禮入京師脫盧柟於獄。■■李攀龍王世貞輩結詩社榛爲長攀龍次之及攀龍名大熾榛與論生平頗相鐫責攀龍遂貽書絶交世貞輩右攀龍力相排擠削其名於七子之列然榛游道日廣晉諸王爭延致河南北皆稱謝榛先生趙康王卒榛乃歸

■■萬曆元年冬復游彰德王曾孫穆王亦賓禮之酒闌樂止命所愛賈姬獨奏琵琶榛所製竹枝詞也榛方傾德王命姬出拜光華射人藉地而坐竟十章榛曰:「此山人里言耳請更製以備房中之奏。」詰朝上新詞十四闋姬悉按而譜之明年元旦便殿奏伎酒止送客卽盛禮而歸姬於榛榛游燕趙間至大名客請賦壽詩百章成八十餘首投筆而逝。■■當七子結社之始尙論有唐諸家各有所重榛曰:「取李杜十四家最勝者熟讀之以會神氣歌詠之以求聲調玩味之以裒精華得此三要則浩乎渾淪不必塑謫仙(이백)而畫少陵(두보)。」諸人心師其言厥後雖合力擯榛其稱詩指要實自榛發也

 

*사고전서 수록 사명집은 전체가 고시, 율시 등으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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