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인 사진(謝榛)의 시문집을 읽었다
讀謝山人集
齊名二子藝通神
亦數宗臣與國倫
誰識中原馳上駟
屬鞬還有眇山人
두 거장이 이름 나란히 하니, 예술이 신의 경지에 통했구나
종신과 오국륜을 역시 헤아릴 수밖에.
누가 알리, 중원에선 상사가 달린다면
촉건에는 도리어 이 애꾸눈 산인이 있다는 걸
*謝榛(1495~1575): 후칠자 중 한 사람. 16세에 악부시로 고향에서 유명해졌다. 저서로 《四溟集》10권이 있다. (전자판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음) 어릴 때부터 한쪽 눈이 애꾸였다. 歌詩를 짓는데 치력.
*宗臣(1525~1560): 후칠자 중 한 사람. 강소성 흥화현 출신. 자는 子相 호는方城. 저서로 《宗子相集》 15권이 있다. 초기 시는 이백의 스타일을 모방했으나 잘 되지 않았음.
*吳國倫(1524~1593): 후칠자 중 한 사람. 자는 明卿, 호는 川樓子 혹은 南嶽山人. 호광성 출신. 1550년 진사.
*上駟: 가장 좋은 사마(駟馬).
*屬鞬: 오른쪽에 활집을 부착한다[右屬橐鞬]의 준말로 《좌전》 희공 23년 조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하지 못하다. 鞬(동개 건)은 말 위에 활과 화살을 꽂아 등에 지는 물건이다. (고전번역원 각주에 희공 14년이라 한 것은 잘못)
-“若不獲命, 其左執鞭弭, 右屬櫜鞬, 以與君周旋.” ([중이가 말했다] 그래도 戰爭을 중지하자는 임금님의 命을 들을 수 없으면注+ 왼손에는 채찍과 활을 잡고 오른쪽에는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임금님과 한 판 겨루어 보겠습니다)
-中原과 대비되는 지명이어야 할텐데.
*《明史》에서는 모곤 다음에 나옴.
■■謝榛,字茂秦,臨淸人。眇一目。年十六,作樂府商調,少年爭歌之。已,折節讀書,刻意爲歌詩。西游彰德,爲趙康王所賓禮。入京師,脫盧柟於獄。■■李攀龍、王世貞輩結詩社,榛爲長,攀龍次之。及攀龍名大熾,榛與論生平,頗相鐫責,攀龍遂貽書絶交。世貞輩右攀龍,力相排擠,削其名於七子之列。然榛游道日廣,秦、晉諸王爭延致,大河南、北皆稱謝榛先生。趙康王卒,榛乃歸。
■■萬曆元年冬,復游彰德,王曾孫穆王亦賓禮之。酒闌樂止,命所愛賈姬獨奏琵琶,則榛所製竹枝詞也。榛方傾德,王命姬出拜,光華射人,藉地而坐,竟十章。榛曰:「此山人里言耳,請更製,以備房中之奏。」詰朝上新詞十四闋,姬悉按而譜之。明年元旦,便殿奏伎,酒止送客,卽盛禮而歸姬於榛。榛游燕、趙間,至大名,客請賦壽詩百章,成八十餘首,投筆而逝。■■當七子結社之始,尙論有唐諸家,各有所重。榛曰:「取李、杜十四家最勝者,熟讀之以會神氣,歌詠之以求聲調,玩味之以裒精華。得此三要,則浩乎渾淪,不必塑謫仙(이백)而畫少陵(두보)也。」諸人心師其言,厥後雖合力擯榛,其稱詩指要,實自榛發也。
*사고전서 수록 사명집은 전체가 고시, 율시 등으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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