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연사 7: 초록 개고 (0413월)
초록
허균의 「별연사고적기」는 강릉 김씨의 시조라 알려진 김주원 및 그의 어머니 연화 부인에 관한 일화를 서술한 글이다. 작자는 이 이야기를 정구(鄭逑, 1543~1620)에게 입수한 ‘고기(古記)’를 보고, 거기에 실린 여말선초의 문신 이거인(李居仁, ?~1402)의 글을 보고 옮겼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글은 허균의 창작물로서가 아니라 고려 시대 서사 작품의 일종으로 취급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이 글을 허균의 창작물로 보아야 함을 주장한다. 「별연사고적기」에 실린 내용은 허균 당시에 입수 가능했을 사료의 내용과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별연사고적기」에서는 소위 ‘명주군왕’ 김주원과 원성왕 김경신을 친형제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김주원과 김경신이 친형제일 수 없는 관계로 서술되어 있다. 역사서의 기록을 볼 때, 이들 두 사람은 상호 정치적 경쟁 상대였지 친형제였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내력을 알면서도(허균이 이 두 책을 익히 알았을 것이라는 가정) 굳이 두 사람을 친형제로 쓴 것은 이를 허구 만들기의 작업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별연사고적기」에 서술된 연화부인 일화의 발생 시기와 연루 인물에 대해 기술한 부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부인하는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지방관이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관찬서보다 지방 단위에서 유통되는 정체불명의 문건의 신빙성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 문건의 존재 여부나 그 내용의 신빙성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남아있지 않다. 당시의 정황을 통해 볼 때, 「별연사고적기」에서 허균이 이거인의 글이 실린 문건을 입수했다고 한 대목은 문학적 수사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사료의 시대순서대로 논의 순서 재배치)
이상의 관점에 입각하여 본고는 「별연사고적기」를 허균 자신의 정체성 피력에 주안점이 놓인 텍스트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이 작품에서 작자의 정체성은 통합과 배제의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허균은 자신을 강릉 지역의 ‘오래된 명문가’의 후손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가문 및 지역의 전통과 연결된 것으로써 재현한다. 둘째, 기존에 알려진 설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고로(古老)와 지리지 편찬자들에 대한 불신이다. 허균은 기존 설을 기각함과 동시에 더 신빙성 있는 설을 내놓는 자로서 자신을 위치 지우고 있다. 이는 낭설의 전파자들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논의 순서 재배치)
이상에서 제기한 「별연사고적기」 해석이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허균이 글을 통해 구성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은 혈연이나 지연에서 분리된 것으로 상상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 편으로 작자의 정체성은 오늘날에 그런 것처럼 타자와 자신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의해 형성된다. 또한 허균의 한문 산문이 지니는 실험적 기법, 즉 허구적 일화 소개를 통한 자아 재현의 양상을 확인함으로써, 산문 작가로서 허균의 위상이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점이 본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수정방향: "우리가 <별연사>를 통해서 고려시대 소설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7세기 허균에 대해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게 핵심.)
*핵심어: 명주가, 연화부인, 소설사, 허균, 성소부부고, 강릉김씨, 이거인.
*목차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 재고(再考)
1. 서론
2. 「별연사고적기」 및 관련 기록의 비교제
1) <삼국사기>, <삼국유사>, 및 강릉 양어지 설화
2)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별연사고적기」
3. 「별연사고적기」에 나타난 자아상
1) 지역과 가계, 그리고 자아의 위치
2) 기존 전설에 대한 불신과 자기 선양
4.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