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_성소부부고

누실명(陋室銘) (권14), 96자

nicole0301 2020. 8. 31. 14:29

房闊十笏 방은 사방 열 자

南開二戶 남쪽으로 문을 두 개 내니

午日來烘 낮이면 햇볕 들어

旣明且煦 밝고 따뜻하네.

 

家雖立壁 집이라야 덩그러니 네 벽뿐이지만

書則四部 책은 온갖 종류 그득하거늘

餘一犢鼻 겨우 쇠코잠방이 하나 걸치고 사는 건

唯文君伍 탁문군의 짝과 같지.

 

酌茶半甌 차 한 잔 따라 놓고

燒香一炷 향 하나 피우고

偃仰棲遲 한가로이 지내며

乾坤今古 천지와 고금을 살피네.

 

人謂陋室 남들은 누추한 집이라며

陋不可處 누추해 살 수 없다지만

我則視之 내 보기엔 여기가

淸都玉府 청도요 옥부라네.

 

心安身便 마음도 몸도 편안하니

孰謂之陋 그 누가 누추하다 하는지?

吾所陋者 내가 누추하게 여기는 건

身名竝朽 몸과 이름이 썩어 사라지는 것.

 

憲也編蓬 원헌은 가난해서 쑥대 엮어 문 만들고

潛亦環堵 도연명은 작은 방 안에 벽뿐이었지만

君子居之 군자가 사는 곳에

何陋之有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사방 열자: 방장(方丈) 곧 가로세로 각 1장(丈: 약 3미터) 너비의 작은 방을 말한다. 원문의 “十笏”은 열 자 곧 1장이다. 유마힐이 병들었을 때 그가 거처했던 방이 사방 10홀 곧 1장이었다고 해서 그 방을 ‘방장실(方丈室)’ 혹은 ‘십홀방장(十笏方丈)’이라 부른다.

*煦(후): 따뜻하게 하다.

*棲遲: 체류하다.

*겨우 쇠코잠방이~짝과 같지: ‘쇠코잠방이’는 여름에 농부가 일할 때 입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잠방이(홑바지)이다. ‘탁문군의 짝’은 사마상여를 말한다. 사마상여가 과부 탁문군과 함께 사랑에 빠져 달아난 뒤 주막에서 술을 팔아 생계를 꾸렸는데, 이때 잠방이를 입고 일을 거들었다는 고사가 있기에 한 말이다.

 

*甌(구): 사발

*청도와 옥부는 옥황상제가 사는 곳을 말한다. 清都는 초사와 열자에 나옴. 《楚辭‧遠游》:“集重陽入帝宮兮,造旬始而觀清都。”(중양을 모아 상제의 궁궐에 들어감이여, 순시에 나아가 청도를 보도다.) 이수광도 「苦熱」(혹독한 더위를 괴로워하다, 『지봉집』 권13)에서 “九霄風露夢淸都”(풍로 서늘한 구소의 청도 꿈을 꾸었다오)라고 한 적이 있다.

玉府는 도교에서 道觀, 仙府, 仙宮을 가리킴. 혹은 도교에서 서적을 보관하는 곳을 말함.

 

*원헌(原憲)은 ~ 문 만들고: 공자의 제자 원헌은 몹시 가난해서 생풀을 엮어 지붕을 만들고 쑥대를 엮어 문을 만들고 살았다는 말이 『장자』 「양왕」에 보인다.

양왕 10장에 “原憲居魯할새, 環堵之室에 茨以生草하며 蓬戶不完이어늘 桑以爲樞하며 而甕牖(옹유)二室을 褐以爲塞이오” (원헌이 노나라에 살았는데, 그 집은 상하 사방이 10척(1丈)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집인데다, 지붕은 푸른 풀로 이었으며, 쑥 풀을 묶어 만든 房門도 완전치 않은데, 뽕나무 가지를 깎아 지도리로 삼고, 밑 빠진 항아리를 창으로 삼은 두 방을 거친 갈포로 막았다.)

*도연명은 ~ 벽뿐이었지만: 도연명은 가난해서 좁은 집 안에 벽만 덩그러니 있었다는 말이 「오류선생전」에 보인다. (“環堵蕭然, 不蔽風日” 좁은 방이 쓸쓸하고 조용했으며, 바람과 해를 가리지도 못하였다.)

*環堵(환도): 사방에 둘러 각 한 장 정도의 흙담이 있음. 협소하고 누추한 방을 뜻함.

 

*정길수 역, 2012,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돌베개, 179~180쪽.

*성소부부고 권14 수록(한국고전번역원-1983년 정양완 역).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누실명을 지은 바 있다. 유우석은 河北省 출신이며, 유종원 등과 개혁을 기도한 바 있다. 죽지사 등을 지었고 만년에는 백낙천과 교유했음. 자는 몽득(夢得).

 

山不在高 산이 높지 않아도

有仙則名 신선이 있으면 이름이 나고

水不在深 물이 깊지 않아도

有龍則靈 용이 있으면 신령스럽네.

斯是陋室 이곳은 비록 누추한 방이지만

惟吾德馨 오직 나의 덕으로 향기가 나네.

苔痕上階綠 이끼는 뜨락에 올라 푸르고

草色入簾靑 풀빛은 주렴에 들어 푸르도다

談笑有鴻儒 담소하는 이에는 큰 선비가 있고

往來無白丁 왕래하는 이에는 무식한 이 없으니,

可以調素琴 거문고를 타고

閱金經 불경 살펴볼 수 있어라

無絲竹之亂耳 음악이 귀를 어지럽히는 일 없으며

無案牘之勞形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는 일 없어서

南陽諸葛廬 남양 제갈량의 초가집이나

西蜀子雲亭 서촉 양자운의 정자와 같도다.

孔子云 공자도 말씀하기를

何陋之有 “군자가 거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