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_성소부부고

내가 화가 동하는 병 때문에 중국에 사신 갈 수 없으므로 순군에서 견책을 기다리며 장구를 지어 기헌보에게 주어 회포를 풀다 (余以病火動, 不克燕行, 竢譴巡軍, 作長句贈奇獻甫以抒懷) (권2 ..

nicole0301 2020. 9. 15. 14:51

吾東文章天下聞 우리나라의 문장은 천하에 들렸어라

羅季始稱崔孤雲 신라 말엽 비로소 최고운을 일컬었네

益齋牧隱鳴麗末 익재와 목은이 여말에 울리더니

降及我朝多絶群 우리 조정 내려와서 뛰어난 이 많았다오

 

二百年來俊民出 이백 년간 걸출한 인물들 나타나서

燦如象緯羅天闕 찬란하게 별들이 천궐에 나열된 듯 하였네.

中間縱許湖蘇芝 중간에 호음, 소재, 지천이 있었지만

毋奈劌刃遭磨鈌 상한 칼날 갈린 칼을 만났으니 어쩌리.

 

手提旗鼓登將壇 깃발과 북을 손수 들고 단에 오르니

蓀谷老人才尤傑 손곡 노인은 재능 더욱 걸출하다

王孟高岑力未工 왕유·맹호연·고적·잠삼도 그에 못 미치리

直與造化爭其功 곧장 조화와(조화옹과) 공을 다투네.

 

神交早定權與李 신교는 일찌감치 권필과 이안눌 정했으니

屬鞬左右誰雌雄 속건하는(활 꽂는) 좌우에는 자웅이 누가 되려나

幽燕沈鬱自年少 소년 시절부터 유연의 침울이 있는데

  [人評子敏詩, 如幽燕少年已負沈鬱之氣]

  [사람들의 평에 “자민 이안눌의 시는 유연의 소년 같아서 이미 침울한 기운을 짊어졌다”했다]

步波洛襪眞淸妙 물 위를 걷는 낙신의 버선처럼 참으로 맑고 묘하구나. 

  [人評汝章詩, 如洛神凌波微步, 轉眄流光, 吐氣如蘭]

  [사람들의 평에 “여장 권필의 시는 洛神이 물결을 가로질러 사뿐사뿐 거닐며, 눈을 돌려 및을 흘려 뱉는 기운이 난과 같다” 하였다.]

 

縱有寶肆陳木難 비록 가게에 벌일 목난(진주의 한 종류)은 있다지만

  [人評僕詩曰, 波斯胡陳寶列肆, 下者乃木鷄火齋]

  [사람들이 내 시를 평하기를, “페르시아의 호인이 가게에 보배를 벌여 놓은 것 같은데, 그 중 품질이 낮은 것이 목계와 화재다” 했다.] 

未免魚目混珠誚 물고기 눈깔과 진주 뒤섞였다는 나무람을 면할쏜가.

鍾鏞在序迭唱酬 징과 쇠북 序에 있어 창수를 가름하니

含宮咀徵鳴琅璆 반복해서 읊으면 옥 부딪치는 소리 나겠네.

 

晩得奇郞氣突兀 늦게 급제한 기씨 사내 우뚝하다 그 기개여

落筆片語驚千秋 붓만 대면 나오는 짧은 말은 천추를 놀라게 하는구나

奇郞立身何骯髒 기씨 사내 입신함이 어찌 그리 대단한지.

傲睨不肯在草莽 초야에 묻히기를 달가워하지 않아 세상을 흘겨보네

 

頃從吾儕角拳勇 아래로 우리들과 주먹을 겨루는데

吾儕三人力難當 우리 세 사람이 그 힘 당하기 어려웠네

上苞盧駱與崔李 위로는 노조린·낙빈왕과 최융·이교를 포함하고

下掩空同大復子 아래로는 이몽양과 하경명을 뒤덮었네

 

南宮不樂還水曹 남궁(예조)은 즐겁잖아 수조(공조)로 돌아오니

何遜子瞻俱作是 하손과 자첨(소식) 모두 여기에서 일어났네.

未害從俗且浮沈 세속 따라 부침함도 해롭잖으니

莫恨世上少知音 세상에 알아주는 사람 없다 한을 마소.

 

高文自足映千代 높은 문장 절로 천추에 빛나리니

群兒謗傷相從侵 조무래기들 중상 비방이 따른다네. (群兒謗滿從相從은 오자)

余也歷落可笑人 나 또한 영락하여 가소로운 사람이라

不肯斂板拜車塵 수레 먼지 바라보며 옷깃 가다듬기 싫어하네

 

是以時宰欲殺之 이 까닭에 당시 재상들이 나를 죽이려 들어

譴訶斥逐何紛繽 꾸지람과 쫓아냄이 어찌 그리 분분한지.

官則可奪氣肯奪 관직은 빼앗아도 기개 어찌 뺏길손가

二豎雖強難我殺 병이 비록 모질어도 날 죽이기 어려울 걸

 

金吾席稿汗沫肌 금오에 거적 까니 땀이 살에 흠뻑 젖고

白簡生風足濯熱 백간에 바람 이니 족히 열을 씻을레라

平生文字結怨仇 평생에 문자로써 원수를 맺었으니

諸姪爭勸且姑休 조카들은 다투어 붓을 쉬라 권하거든

 

我自樂此不知惡 내 스스로 이를 즐겨 싫증낼 줄 모른다오

何物人間萬戶侯 무슨 물건인가 저 인간 세계의 만호후란

長安閉門三日雨 장안에 내리는 3일 비에 문 닫고 잇노라니

涼風蕭蕭生竹樹 서늘 바람 으스으스 대나무에 불어오네.

 

苦念奇郞胡不來 무척도 생각나라 기씨 사내 왜 안오지

有酒徑欲持勸汝 있는 술 곧 가져다 자네에게 권하련다.

可憐寂寞身後名 가련토다 적막한 죽은 뒤 명예쯤

何補生前抱辛苦 생전에 안은 괴로움 무엇에 보탬되리

 

但當寫詩盡千紙 시를 쓰면 천 장의 종이 다 물들여

吐盡胸中不平氣 흉중의 불평을 단번에 다 내뱉네.

奇郞見之當大笑 기씨 사내 보거든 의당 크게 웃을 걸세.

古來賢達皆如此 예로부터 현달한 자는 다 이와 같다고.

 

[石洲云如此大作, 亦洗科習, 滔滔巨麗, 莫之與亰.]

[석주 권필이 말했다. “이런 대작은 과체(科體)의 폐습을 씻을뿐더러 도도하고 거려하여 더불어 겨룰 자 없으리라.”]

 

*기헌보: 기윤헌(奇允獻, 1575~1624). 본관은 행주. 기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대항. 1605년 문과 급제, 1617년에 형인 영의정 기자헌이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비론에 반대하여 유배될 때 형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오히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제거할 때 동조하였다는 죄목으로 국문을 받았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과 내응하였다는 혐의로 온 집안이 추국을 받아 끝까지 불복하다가 장살되었다.

 

*象緯: 일월오성(日月五星)을 말한다.

*幽燕: 하북 북부와 요녕 일대. 당 이전에는 이곳이 幽州였고 전국시대 이후 이곳이 燕國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鍾鏞在序: 歌曲 등의 중요한 부분을 시작하기 전에 연주하는 곡을 말한다.

*咀徵含商: 謂講求音律反覆吟詠

*琅璆: 玉相擊聲

*白簡: 도교 용어. 신에게 기원하는 문서.

 

#도산박씨산장기 #두보 #기윤헌 #불평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