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1991) 조선후기 소품체 산문 연구 (부산대 박사)
김성진, 「조선후기 소품체 산문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I. 서론
1. 문제의 제기
2. 연구의 대상과 방법
II. 소품체 산문의 형성 배경
1. 신분체제의 동요와 소외문인군의 동향
2. 학풍과 세계관의 다원화 현상
3. 반의고적 문풍과 공안파의 영향 (27쪽)
III. 소품체 산문의 유형
1. 유기류
2. 서발류
3. 척독류
4. 수상잡록류
IV. 소품체 산문의 특질
1. 진기추구와 서정지향
2. '금시'와 '조선'의 중시
3. 우언적 표현과 해학미
4. 문답과 반복의 서술구조
5. 속어사용과 풍속설화의 수용
V. 소품체 산문의 문학사적 위상
1. 소품체 산문의 문학적 의미
2. 소품의 내재적 발전과 그 추이 (160쪽)
VI. 결론
*초록
소품체 산문이란 주로 명말 공안파에 의해 주도원 소품의 경향을 띠고 청신한 문체로 신변잡사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묘사했던 산문을 말한다. 소품체 산문을 구사했던 대표적인 문인인 박지원·이덕무·박제가·이옥·김려 등이다. 이들은 문학을 과거에 의한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므로 경학이나 도덕과 같은 문학 외적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뛰어난 서정성과 참신한 언어 구사를 통해 당대 문단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문풍은 신분체제의 동요와 사유구조의 다원화라는 영·정 연간의 변화기적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허균과 김창협, 이의현 등으로 이어지는 반의고적 문학관을 계승하였으며 성령 위주의 공안파 문학관을 수용하였다. 이들 문학관의 핵심은 眞機의 추구에 있었다. 이들의 眞機 추구는 시대적으로는 ‘古’보다 ‘今’을, 공간적으로는 중국보다 조선에 가치를 두는 현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소품체 산문가들은 表·奏·策·詔令과 같은 館閣廟堂之文보다는 遊記·尺牘·序跋·隨想雜錄·日記와 같은 문예적 산문에 힘을 기울였다. 소품체 산문은 우언과 풍자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주객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가는 수사기법을 구사하였다. 특히 이전의 문학에서 금기시했던 민간의 풍속과 설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속담도 자주 인용되었다. 서발과 누정기, 그리고 척독 등에 나타난 이와같은 문장의 질적 변화가 바로 보수적 문인들에 의한 반소품적 문체반정을 촉발시킨 주된 요인이었던 것이다. 소품체 산문의 배척을 목표로 한 이와같은 문체반정의 존재는 오히려 소품체 산문의 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확인시켜 준다. 소품체 산문은 문체반정 이후로는 쇠미하게 되나 이들이 추구했던 眞機와 抒情 중시는 김정희의 문하생들이 중심이 된 성령론으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소품체 산문가들이 시도했던 언문일치의 노력은 姜璋을 비롯한 金正喜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는데, 이들이 후일 개화파의 주역이 되었으니만큼 소품체 산문은 국한문혼용과 개화기 문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I. 서론
-그간 조선후기 산문 연구는 소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소품의 개념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그런데 김도련은 박지원의 글을 소품이라는 차원에서 조명했음. (그러나 그 연구에 한계가 있음. 여한십가문초 같은 것은 고문으로 쓰여진 것인데 그에 대해 소품적 측면에서 분류하고 기술하여 혼선이 빚어짐) 조선 후기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품체 산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품의 특성: 4~7쪽.
II. 소품체 산문의 형성 배경
3. 반의고적 문풍과 공안파의 영향 (27쪽)
가. 반의고문풍의 대두와 소품체로의 전이
나. 중국 공안파와 소품체 산문 (31쪽)
-소품은 형식보다 내용에 의해 구별되는 것으로, 고문체 발전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의고문파의 대두, 조선에서는 의고문파라 하면 이반룡·왕세정을 가리켰고, 이들의 글이 유입된 것은 선조 연간. 왕·이의 문학론에 따라 글 지은 것은 최립. 이후 의고파에 대한 반발이 등장하고 반의고 문풍은 김창협 등에 의해 주도되었음. 이들이 보수화되는데 그들이 남유용, 황경원, 유한준, 박준원, 홍석주, 김매순 등임. 반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김려, 이옥 등은 초월 아속의 진보적 문학관. (그 이후의 전개에 대한 서술은 생략)
-공안파의 등장. ‘獨抒性靈’의 기치. 이들은 호북성 공안인이라서 공안파라 불렸음. 이들은 백거이와 소식을 전범으로 삼았는데, 소식의 문장 중 單文小記를 즐겨 읽었다.
-공안파 문인들은 정통 고문에서 꺼리는 동요, 방언, 가담항설을 활용하고, 소설과 희곡에도 새로운 의미 부여. (34)
-공안파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문헌적 증거가 있는) 문인은 이덕무. (35)
V. 소품체 산문의 문학사적 위상
2. 소품의 내재적 발전과 그 추이 (160쪽)
-이규보: 신어 사용 주장하고 문장의 법식에 매이기를 거부했다. 속어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짧은 글로 인생의 철리를 전하는 미감을 보여주었음. 예) 鏡說.
-여말 선초에는 주로 說을 중심으로 소품의 명맥이 이어져 왔다. (李詹, 강희맹 등) (163쪽)
-허균은 모방과 투식을 반대하고 (文說), 常語 사용을 주장했음. 그러나 그의 상어 사용 주장은 고문 작법의 하나로 든 것이지, 구비문학적 요소를 수용하려 한 것은 아님. (163~164) 허균은 문장의 기능을 通情과 載道로 봤음. 재도지문과 달의를 주장한 점에서 여느 고문가들과 마찬가지임. (164)
하지만 허균이 예교에 구속된 것은 아니다. (근거로 허균의 ‘문파관작’과 안정복의 ‘천학문답’ 중 ‘남녀의 정욕은 천성이요 윤기의 분별은 성인의 가르침’이란 대목을 인용) (164~165) 또한 허균의 상어 사용 주장은 조선 후기 문장가들처럼 적극적으로 ‘今文’을 내세우고 ‘雅語’에 대비되는 ‘속어’ 사용을 말한 것이라 보긴 어렵다. 그는 여전히 도와 문의 분리를 개탄하고 재도지문을 추구했다. (165)
VI. 결론
1) 한문학에서 말하는 소품이란 대개 만명 공안파에 의해 주도된 단소한 길이의 서정적 산문을 의미함. 본래 불교 용어였으나 만명에 이르러 문학 분류의 명칭으로 굳어진 것.
2) 소품체 산문은 신분 체제의 동요와 사유 구조의 다원화라는 영정 연간의 변혁기적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몰락 양반이나 중인층 같은 소외 문인군의 움직임과 밀접 관련.
3) 소품체 문장가들은 表·奏·策·詔令 같은 관각묘당지문보다 유기·척독·서발·수상잡록·일기 같은 문예적 산문에 주력했음. 그 결과 서발 중에서도 단소한 성격의 제발이 많이 지어지고 서독류 중에서도 단소한 길이의 척독이 분립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4) 眞機 추구, 서정지향적 문체 구사. ‘진기’를 今時와 조선에서 구하려 했다 (후략)
5) 소품체 산문 배척을 목표로 했던 문체반정의 존재는 소품체 산문의 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확인시켜 준다.
6) 소품문 산문의 前史(내재적 발전): 이규보, 이첨, 이달충, 이곡, 강희맹 등이 뛰어난 서정 산문을 남겼다. 이들에 비해 허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조선 후기 소품체 산문에 상당히 접근. 허균은 자아를 중시해야 한다 했고 상어 사용 강조, 반의고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또 재도지문을 추구했고, 민간 전승적 요소의 수용까지는 이루지 못했음. 그럼에도 예교보다 남녀간의 정을 우위에 놓음으로써 소품체 산문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인 경학으로부터 문장의 분립과 서정지향의 단서를 열어주었다. 이처럼 소품체 산문은 공안파 영향 뿐 아니라 여말 이래 이어진 서정 산문의맥을 이은 것이다. (171쪽)
-전체적인 논지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운 것이 많고 읽기에 즐거운 모범적인 논문이었다. 이 논문의 프레임이나 주장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에게도 후행 연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