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2007) 허균 「문설」의 신해석, (in『안쪽과 바깥쪽』)
1장 머리말
-「문설」 원문 (편의상 단락구분)
① 客問於許子曰。當世之稱能古文者。必以子爲巨擘。吾見之其文。雖若浩汗無涯涘。而率用常語。文從字順。讀之則如開口見咽。毋論解不解者。輒無礙滯。業古文者果若是乎。
② 余曰。此其爲古也。子見虞夏之典謨。商之訓。周之三誓武成洪範。皆文之至者。亦見有鉤章棘句。以險辭爭工者否。子曰。辭達而已矣。古者文以通上下之情。以載其道而傳。故明白正大。諄切丁寧。使聞者曉然知其指意。此文之用也。當三代。六經聖人之書與夫黃,老諸子百家語。皆爲論其道。故其文易曉。而文自古雅。降及後世。文與道爲二。而始有鉤章棘句。以險辭巧語。爭其工者。此文之厄也。非文之至。吾雖駑。不願爲也。故辭達爲主。以平平爲文焉耳。
③ 客曰。不然。子見左氏,莊子,遷,固及近代昌黎,柳州,歐陽子,蘇長公乎。其文何嘗用常語乎。況子之文不銓古。而滔滔莽莽焉。是事。毋乃流於飫否。
④ 余曰。之數公之文。亦何異於常耶。以余觀之。雖若簡若渾若深若奔放若倔奇。率當世之常語。而變爲雅眞。可謂點鐵成金也。後之視今文。安知不如今之視數公文耶。況滔滔莽莽。正欲爲大。而不銓古者。亦欲其獨立。奚飫爲。
⑤ 子詳見之數公乎。左氏自爲左氏。莊子自爲莊子。遷,固自爲遷,固。愈,宗元,脩,軾亦自爲愈,宗元,脩,軾。不相蹈襲。各成一家。僕之所願。願學此焉。恥向人屋下架屋。蹈竊鉤之誚也。
⑥ 客曰。子之文旣平易流便。其所謂法古者。當於何求之。
⑦ 余曰。當於篇法章法字法求之。
ⓐ 篇有一意直下者。或鉤連筦鑰者。或節節生情者。或鋪敍而用冷語結者。或委曲繁瑣而有法者。편에는 한 뜻으로 곧장 써내려간 경우도 있고, 혹은 갈고리로 연결하여 열고 닫는 경우가 있고, 혹은 마디마디 정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혹은 포서하다가 냉어로 맺는 경우도 있고, 혹은 자세하고 번쇄하면서도 법도가 있는 경우도 있다.
ⓑ 章有井井不紊者。有錯落而不雜者。有若斷而承前繳後者。有極宂有極短者。有說不了者。
장에는 정연하여 어지럽지 않은 경우도 있고, 뒤섞이되 잡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끊어진 것 같지만 앞을 잇고뒤를 동여 묶은 경우도 있고, 극히 말이 많거나 극히 말이 짧은 경우도 있고, 말을 채 끝을 내지 않은 것도 있다.
ⓒ 字有響處幹處伏處收拾處。疊而不亂處。強而不努處。引而不費力處。開闔處。呼喚處。
자에는 소리가 울리는 곳, 줄기가 되는 곳, 숨는 곳, 수습하는 곳, 겹치되 어지럽지 않는 곳, 억세지만 쇠뇌와 같은 곳, 끌어당기지만 힘을 쓰지 않는 곳, 열고 닫는 곳, 큰 소리로 불러 외치는 곳이 있다.
ⓓ 字不亮則句不雅。章不妥則意不瀆。二者備而乃可以成篇。余之文。只悟此也。古之文。亦行此也。今之所謂解者。亦未必覷此。況不解者否。
자가 밝지 않으면 구가 아름답지 않고, 장이 편안하지[타당하지] 못하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두 가지가 갖추어져야만 편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⑧ 客曰。善。吾不及是夫。
①~⑥이 전반부, ⑦⑧이 후반부.
2장 문설의 문제 제기
-구장극구(난해성) vs 문종자순(명확한 의미전달, 의사소통성)
-난해성과 평이성의 대립은 중국의 의고파와 당송파의 대립에서 재기된 것이었고, 조선에서는 16세기 말 중국으로부터 전후칠자-의고문파가 수용되어 선진 양한의 산문을 창작 전범으로 삼는 진한고문파가 성립되면서부터 시작. (예컨대 윤근수가 웅화에게 편지를 보내어 왕세정과 이반룡 문집의 주해본을 구한 일, 정홍명 “문장은 간과 이가 있을 뿐이라 하여 난해성의 문제를 제기한 일, 유몽인과 조익의 산문 비평론 등)
3장 「문설」의 수사학의 여러 기원
(1) 여태껏 「문설」을 거론하는 논자들은 ②④⑤만 집중 거론해 왔지만 문설의 핵심은 ⑦이다. 그리고 ⑦은 창작에 있어 작가의 개성을 주장하는 논리가 아니다. 작품에서의 언어 운용이란 차원에 주목한 것임. 결코 의고적 창작론에 대한 비판이 아님.
(2) 중국에서는 송대에 편장자구에 대한 비평이 시작되고 원대에는 일반화된 감이 있고, 명대에는 흔한 말이 된다. (110쪽 각주 18~19번). 조선에서는 허균이 최초.
허균의 「독한비자」, 「독손자」: 개합, 억양, 치돈, 석선, 관쇄, 작결 등 산문 수사법의 용어들을 쓰고 있다. 그 중 개합 등의 용어는 명대에 널리 쓰이는 말이니, 용례가 적은 ‘작결’, ‘냉어’ 등의 용례를 따지면, 허균이 보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책은 『문장일관』 (규장각 소장. 1책 42장 고활자본) 상편에서 편장자구법을 전면에 내어 놓은 책은 문장일관이 최초이다. 정묵의 서문에서도 편장자구를 중시하고, 작결과 냉어로 맺는다는 표현을 씀.
왕세정도 『예원치언』 1에서 편법 장법에 대한 언급을 했음. 왕세정은 시에 관한 언급이지만, 그 방식이나 비평의 언어는 산문과 동일한 것. 허균의 의고파 경도에 대해서는 1611년에 지은 「속몽시」 (10제의 의고악부시, 하경명, 서정경, 옹세정을 꿈에서 만난 이야기)가 근거가 됨. (119~120쪽)
→요점: 당대 산문수사학 서적의 일정한 영향. 특히 결정적으로 『문장일관』의 영향 아래 쓰임. 다른 한편으로는 왕세정의 『예원치언』의 간접적 영향.
4장 「문설」과 의고파와의 관계
④ 후대 사람이 지금의 문장을 본다면 어찌 지금 사람들이 그 (옛날의) 몇 분들의 문장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 줄 알겠는가. 하물며 도도망망하게 바로 장대하게 되어 옛 것을 본받지 않은 것은, 또한 홀로 서고자 한 것이었으니, 어찌 스스로 충만해서이겠는가.
⑤ 그대는 그 (옛날의) 몇 분을 자세히 보았던가. 좌씨는 본디 좌씨일 뿐이고 장자는 본디 장자일 뿐이고, 사마천·반고는 스스로 사마천·반고일 뿐이고, 한유·유종원·구양수·소식 역시 본디 한유·유종원·구양수·소식일 뿐이어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점을 배우는 것이고, 남의 지붕 아래 지붕을 엮듯 답습하고 표절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부끄럽다.
위 대목을 근거로 의고적 창작관을 비판한 부분이라고 보기도 했는데, 이는 남의 작풍을 추수하는 데 대한 일반적 비판이지 의고파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누가 이것을 의고적 창작관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는가?)
위 대목을 근거로 공안파와의 근접성을 추정하는 것도 근거가 빈약하다. (성소부부고 최종 편집시점까지는 허균이 공안파 저작을 접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반복. 122쪽)
④에 나오는 말은 이탁오, 원굉도의 귀고천금적 가치판단을 부정하는 시간상대론과 유사한 발상이지만 이탁오와 원굉도의 것이 더 진보적이고 정교. 원종도의 ‘기자오구란 것이 어찌 당대의 가담항어가 아닌줄 알겠는가’란 것도 발상이 유상. 하지만 원종도가 더 직접적이고 명쾌함. 원종도의 그 논문상과 속편 논문하의 골자는 이몽양, 이반룡, 왕세정 등 의고파의 창작이론의 모순처를 공격하는 것임. 그러나 허균은 의고파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음. (이반룡의 고악부에 대한 상찬 등). 허균은 의고와 표절을 구분하고 표절을 비판함. 의고와 표절을 구분하는 의식은 의고파 내부에도 있었음.
⑤에 나오는 말은 강해(전칠자의 한 사람)와 종신(후칠자의 한 사람)에게서도 동일한 논법에 언어구사까지 유사한 구절이 있음. (129~130쪽). 허균의 발언은 전후칠자에게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큼. 강해도 하경명의 문집에 서문을 쓰면서 모방과 표절을 신랄하게 비판했음. 요컨대 강해에게 있어서 개성 추구와 의고는 전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었음.
5장 맺음말
-허균의 문설은 명대 의고문파의 의고적 창작론 수용이후 제기된, 비평사적 배경이 있음.
-허균이 보기에 난해성은 고전의 본래적 속성이 아님. 허균의 문장론은 『문장일관』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허균은 의고와 표절을 구분하여 표절만을 비판함으로써 전후칠자(의고파)를 고평했음. 의고파를 본격 비판하지 못한 이유는 당대까지 진행된 명대 문학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로 인해 의고파에 대한 적절한 비평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탓. (명대 문학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문설에서 주장된 개성 추구가 공안파와 유관하다는 재래의 설은 근거 빈약. 문설에 나오는 개성과 도습 반대는 강해 같은 전후칠자 작가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 개성 추구는 비평사에서 오래전부터 있던 견해고 공안파만의 것이 아님.
-문장일관에 대한 지목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다만 허균이 소위 전후칠자라 불리는 문인들에 대한 상찬을 거듭 표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고파'라는 범주에 대한 예찬인가는 단언하기 어렵다.
-공안파와의 관련이 종전에 추단되던 것에 비해 정도가 낮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의고파에 대한 경도라고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 필요.
-명대 문학사에 대한 강명관의 주요 레퍼런스는 袁震宇, 劉明今 著, 『明代文學批評史』, 上海 : 上海古籍出版社, 1991.
원진우와 유명금의 견해가 명대 문학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라 할 수 있나.